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23주일 루카14,25-34(스승)

jasunthoma 2019. 9. 4. 06:0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제자... 스승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 같아요. 이름하여 pia discipula divino maestro... 줄여서 p.d.d.m.

그렇다면 세상에서 위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하고 따르고 살면서 가르친이가 있다면 그는 누구일까요?????

이름하여 p.d.d.m.???? 네 당연히 그렇습니다. 스승예수의 제자 수녀님들....

하지만 수녀님들에 앞서 쬐끔 앞서 이를 실천했던 이는 바로 사도 바오로였습니다.

오늘 제2독서 필레몬에게 보내는 바오로의 편지에서 세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오로, 오네시모 그리고 필레몬입니다.

바오로와 오네시모는 죄인으로서 감옥에 같혀있었고 필레몬은 바오로의 친구이자 오네시모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죄수인 오네시모를 일컬어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라고 하고

그리고 이어서 또 필레몬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오네시모)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여기서 심장corazón을 다른 성경 번역서에는 entraña내장, 창자, 마음에 새겨진, 깊이 간직한, engendro태아, 갓난 아이 등등으로 번역했습니다.

심장 즉 갓난아이... 이것은 사도 바오로가 오네시모를 낳았다고 말하기 위함이지요.

그런데 그(오네시모)는 바오로가 낳은 아들이기 이 전에 필레몬의 노예()신분이었지요.

그래서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그를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소유권을 단념하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주인을 피해 탈출하려는 노예나 종이아닌 언제나 그대 곁에 있으면서 함께하는 영원한 친구로 되돌려 받아라고 가르침니다.

왜냐하면 이제 사도 바오로도 이미 그(오네시모)를 그가 낳아서 소유한 아들이 아니라 이제는 사랑하는 친구로 되돌려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고 여기에 필레몬까지 합세하여 셋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또한 복음서를 보면 스승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장 먼저 실천한 행동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갈릴레아 호숫가에서의 실천이었지요. 그들은 그들의 소유인 배와 그물 그리고 가진 모든 것을 가족들을 위해 포기하고 스승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래서 살펴보면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라는 메시지가 나오는데 총 세차례나옵니다. 첫째는 갈릴레아에서 그물을 버릴 때(루카5,11), 두번째는 당신의 제자들을 처음으로 파견하실 때(루카9,23),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세번째로 자기 소유를 다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자기 소유를 버리는 대상이 달라짐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 몇몇에게 자기 소유를 모두 버리라고 했지만 두번째는 열두 제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많은 군중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이 점차 일반화 보편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오늘 복음에 해당하는 많은 군중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두가지 비유를 들어 주셨는데 '탑을 쌓을 때의 비유''싸우러 나갈때의 비유'입니다.

도대체 이 비유들을 왜 들려주셨는가??? 이 비유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버리는데 무슨 계산이 필요한가???? 그냥 모두 버리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오히려 그렇게 계산하다가는 시기를 놓쳐 예수님을 더 못따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 비유의 말씀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기 전에 계산하고 헤아려보는 지혜로움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기초만 놓고 마치지 못해서 비웃음 당하게 되거나 또한 평화협정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싸움에 져서 창피를 당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거죠.

먼저는 재물을 버렸지만 그로인해서 명예가 주어지게되면 사람이 교만해 질 수가 있는 거잖아요. 그 명예가 자기 소유로 확정되면 자기 뜻대로 자기 의지대로 하려고 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드러나 보이는 물질적이고 금전적인 내 소유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기 이전에 이런 부분까지 면밀히 계산하고 곰곰이 헤아려보아야 마침내 자기 생명까지 다 소진해 버릴 때까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역설적으로 내 재물을 버림으로써 모든 재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내 의지를 외면해 버림으로써 공동체의 뜻이 솟아나며 내 생명이 다함으로써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태어나고 살아나게 됨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싶습니다.

그래서 당신 제자들에게 오늘 제1독서 지혜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당신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