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25주간 수요일 피에트렐치나의성비오기념 루카9,1-6(딸)

jasunthoma 2015. 9. 25. 04:2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힘과 권한을 부여해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여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생명을 주는 힘과 권한을 부여받았기때문에 길을 떠날때에 생명과 반대되는 것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해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을 떠날때에 지녀서는 안되는 것들이란 사실은 모두 생명을 지켜주는 것들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흔히 길을 떠날때에 챙기는 기본적인 준비물에 해당됩니다.

지팡이, 여행용 베낭,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 여벌의 옷, 그리고 비상금

이러한 것들은 길을 떠날 때에 꼭 챙겨야 할 준비물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비상용 준비물들을 지니지 말라고 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을 챙겨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금방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물없는 광야나 험난한 산으로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가야할 곳은 집이었습니다.

그러한 준비물들이 집밖에서는 필요하겠지만 집안에서는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집으로 파견되는데에 장애가된다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에서는 오늘 복음인 열두제자를 파견(9장)하시는 장면과 더불어 일흔두 제자를파견(10장)하시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러한 지침을 주지 않았지만 일흔두제자를 파견하실 때에는 한가지 특별한 부탁을 하십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곧장 집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챙겨가려면 집안에서 필요한 것을 챙겨야지 집밖에서 필요한 것들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비상용으로 꼼꼼하게 챙기더라도 그런 것들이 집안에서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길을 떠나는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것입니다.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도직하러 가는 것입니다.

일을 하되 길에서 개별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 공동체적으로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특히 우리 바오로인들은 사회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복음을 선포해야하기에 더욱 공동체적으로 사도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도직은 생명을 선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바오로인들은 사도 바오로를 닮아서 그런지 길을 떠나는 것은 두려워 하지 않지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파견된 이들은 좀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이 문제지 전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이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마르9,38; 루카9,49)

따라서 우리가 전하는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감하게 죽음을 선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을 추구하면 천상의 것을 잃는다는 것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3,19) 는 말씀대로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듯이 과감하게 털어버리고 다른 고을에도 복음을 선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종살이 하는 사람을 노예라고 하는데 오늘날에 노예는 노할 것을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다는 말이 왠지 허투로 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생명을 거부하고 기어이 죽음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그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굴복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열매가 풍성히 맺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