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24주간 수요일 루카7,31-35 배려하는 신앙(딸협력)

jasunthoma 2015. 9. 18. 23:29

오늘 복음 말미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신학원이나 신학교에서나 혹은 성경공부 강의를 들을 때에 철학과 신학의 상관관계에 관하여 강사로부터 흔히 말이 있습니다.

철학(지혜)은 신학(믿음)의 시녀다. 즉 종이다. 종노릇을 한다.

여기서 철학은 배려하는 학문// 신학은 배제하는 학문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 사람들의 배려심이 없는 믿음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그들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이 세대 사람들은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들이 장터에서 편을 갈라 앉아 서로 자기가 옳다고 소리지르는 철없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세대가 왜 그토록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른 소리를 내며 서로 자기가 옳다고 말한다고 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때 당시(복음이 쓰여질 당시)에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였습니다.

특히 요한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던 것은 세례자 요한이 유다교에 얽매인 처지에서 실천한 최고 절정의 성전 정화 예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시비움과 회개

요한은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합당하게 바친 음식조차 먹지 않는다고 요한을 마귀취급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오셔서 무엇이든지, 그리고 무슨날이든지 개의치 않고 먹고 마시니까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로 된 신랑인줄을 그들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안식일을 존중하셨습니다.

지킬 것은 지키셨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이면 꼬박꼬박 빠지지 않고 회당을 가셨습니다.

다만 이방인과 있을 때에는 이방인이 지키는 예식으로

유다인이 있을 때에는 유다인이 지키는 전통 규정을 존중하셨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이시고 존중하는 모습을 당신의 제자들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신 모습을 당신의 제자들은 보고 배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로와 바오로는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바오로에게 면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방인과 있을 때에는 이방인의 처지에서 그들이 차린 음식이 부끄럽지 않도록 그들의 예식을 존중하여 스스럼 없이 이방인의 음식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아예 자기는 이방인으로 자처했을 정도로 이방인의 예식을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더욱 신랑이 있는 동안에는 함께 먹고 마시는 배려심이 필요했던 겁니다.

유다인들이 나팔을 세번 불어서 안식일의 시작을 알리더라도 죽은 듯이 단식하며 울고 애통해 할수만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단식하며 울고 애통해 하더라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마냥 관망할 수많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다인이면서도 왜 이방인처럼 안식일에 메이지 않게 되었을까요?

결정적으로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오시니까 안식일 규정이 허물어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여러 규정들 중에서도 날짜와 관련된 규정이 가장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허물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최근 북한이 서울보다 30분 늦게 평양표준시를 정하자 남북한이 혼란스러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1시간도 아니고 30분이 틀어졌는데 어려움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2천년 전 유다인들이 겪어야 했던 것은 1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아예 날짜가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루가 늦어진 것을 경험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회당에서 쫓겨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서 다시모일 때에는 회당에서 모이지 않고 누구누구 집에서 모였습니다.

사도의 모후집, 스승예수의 집, 알베리오네 집, 바오로 집, 소피아 집, 리디아 집~~

 

요한 복음을 비롯하여 공관복음에서 신랑이 오신 날에 관해서 모든 복음서에서는 그날이 주간 첫날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굳이 유다교 날짜로 따진다면 주간첫날이니까 월요일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안식일 다음날인 주간 첫날을 주일로 지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그날에 부활하시고 그날에 승천하시고 또한 성령이 그날에 강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신랑이 오신날, 즉 주일이 새로운 날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보내신 천사를 만나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님을 직접 만나는 주일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까다로운 규정을 다 지키고도 정작 신랑은 나타나지 않는 안식일이 아니라

주님을 흠숭하기만하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주님을 직접 만나뵈올 수 있는 주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세대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누가 서로 옳고 누가 서로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전에 종교에 대한 배려심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배려심이 없는 종교는 철없는 아이들의 소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요즘 우리는 배려할줄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려심이 없으면 바라봄도 기다림도 없습니다.

흔들리는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배려하지 못하니까 참지못하고 항상 흔들리고 항상 그을음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유다교처럼 배려심이 없는 종교도 없는것 같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오늘날 일부 개신교가 그대로 빼 닮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너희는 우리가 기뻐할 때에 기뻐하지 않았으니 너희가 드리는 기도는 마귀들린 기도이고,

그들은 우리가 슬퍼할 때에 슬퍼하지 않았으니 너희의 잔치는 죄인들의 우상숭배다 라며 배척하는 것을 서슴치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형제들 또한 한 형제로서 존중해주고 배려해 주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려냈다" 고 말씀하신 지혜의 자녀가 바로 이러한 하느님처럼 자비롭고 관대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혜를 다하여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 신앙의 불이 타올라 배려심이 많은 제자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