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으로 맞서지 말고 사랑으로 맞서라
그러나 악으로 맞서는 거나 사랑으로 맞서는 거나 맞서는 것은 같은 것이다.
즉 보복을 하되 악이 아니라 사랑으로 보복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적 가르침은 이러한 부분에 멈칫하도록 다음과 같이 말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는 말을 한다.
즉 맞서는 것 자체를 금하라는 것이며 이것은 분명 가톨릭적 가르침과 다름을 지적하는 것이다.
20080616 [ 진정 원하는 것 ] 마태5,38-42
오른 뺨을 치거든... 십리를 가 주어라.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기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 사실 아합은 이즈벨의 계략에 동조한 셈인데 아합은 먼저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기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불렀고, '사람'을 죽였고, '거짓증언'을 했고, '남의 재산'을 탐내기 까지 여러가지 계명을 거슬렀다. 사실은 아합이 원한 것은 포도밭이었지 죄를 범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봇의 포도밭을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사고 싶었다. 그런데 왜 다른 포도밭을 두고 나봇의 포도밭만을 고집했을까?
그토록 그가 원하는 것이 그 포도밭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포도밭,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전해온다던 그 곳을 거닐며 다시 그 포도밭에서의 향수어린 추억을 되살려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무고한 백성을 무참히 죽이고 말았다.
그렇다면 아합이 진정 원하는 것은 포도밭이 아닌셈이다. 즉 물질적인 실재가 아닌 정신적인 안식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몸은 세속에 찌들려 고통스러워도 영혼만이라도 편안히 쉴 수 있게 배려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합왕은 왜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못했을까? 나봇에게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 했더라면 그가 왜 거절 할까? 나봇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포도밭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야 하는 책임을 다할 수 있어서 좋고, 아합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세속의 찌든 영혼을 쉬게하여 하느님의 백성들을 잘 돌보는 의무를 다해서 좋지 않을까.
그는 포도밭을 차지하여 좋은 열매를 거두어볼까 했지만 결국은 좋지못한 추억을 심고 말았다. 자신이 먹고싶은 것은 생명이 달린 영혼이었지 고통받는 죽음의 포도밭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합은 그가 뿌린 죽음의 씨앗에서 자라난 열매를 곧 거두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어라'고 하신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지극히 인본적인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는 것과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는 것 또한 지극한 인간 사랑에서 기인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그와 함께 있을 때 가능하다. 오른 뺨을 때린다고 달아나 버린다면 더 이상 그와는 뺨을 때릴 만큼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고, 오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을 피해서 달아나 버린다면 더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을 수 없을 것이다. 주고자 하는 원의가 예수님을 닮을 수록 육신이든 영혼이든 어느것이 먼저냐는 계산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는 둘 다 소중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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