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신구약성경을 통틀어 사랑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책은 요한복음서(59회) 입니다.
그리고 요한1서(57회) 입니다. 이 두권의 책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무려100번 이상을 사용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시편(47회)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통해서 전하고 있는 사랑은 공관복음에서 가르치는 사랑과 조금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 사랑을 얘기할때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만큼은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는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베푼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고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먼저는 자기 자신에게 베푼 이기적인 사랑을 전하는 것이고
나중은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이타적인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요한복음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은 좀 더 공동체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고 하신 말씀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에 잠시 머물러보는 것도 공동체적 사랑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관계성 안에서 볼 때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또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원수가 아니라 웬수 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유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11사도들은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선발했습니다.
요셉은 이름난 사람이고 마티아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뽑았더니 마티아가 뽑혔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로 뽑히지 못한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고도 불리던 요셉은 어떠했을까요?
공동체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직무와 상관없이 친구로 받아들일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뽑힌 사람도 뽑은 사람도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모두 친구로서 수평적 관계를 형성할때에 공동체적 사랑은 완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뽑힌 사람은 뽑힌 사람대로
뽑는 사람은 뽑는 사람대로
또한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처럼 뻣뻣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뽑히지 못하면 뽑는 사람이라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자기가 뽑지 못하면 뽑히기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뽑는 사람은 예수님이시고 뽑힌 사람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모두 친구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아직도 공동체 안에서 사도직 직무로 인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서로가 친구로 불리움 받았다는 의미를 잘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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