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부활팔일축제내화요일 요한20,11-18 주님의 거처(대전협력)

jasunthoma 2015. 4. 9. 02:0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부활의 첫 증언자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만이 예수님 부활의 유일한 첫 증언자요 목격자로 등장합니다.

시몬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는 빈무덤만 보고 돌아갔을 뿐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도 처음에는 빈무덤만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두 제자에게는 보이지 않던 천사가 마리아에게는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간데 없고 마리아만이 홀로 열린 무덤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야!"하고 부르십니다.

이에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어 "라뿌니!"하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마리아는 예수님을 못 알아봤습니다.

예수님을 보고도 정원지기로 생각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동산지기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신줄을 모르고 정원지기/ 동산지기로 보았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밖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무덤밖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즉 빈무덤을 보고 믿었던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이 아니라 무덤 바깥에 계신 예수님을 뵈옵고 동산지기로 알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마리아도 라뿌니 하고 예수님을 부르며 서로의 신원을 확인하였던 마리아가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된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아담은 동산지기였습니다.

창세기2장을 보면 아담에 관하여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시던 날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 . 그리고 그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이렇게 동산지기와 이야기를 나눈 마리아가 그분이 곧 부활하신 새 아담 예수님 이심을 확신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야!"하고 당신을 찾고있는 이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신 경우는 베드로와 라자로를 제외하고 마리아뿐입니다.(필립보를 부르시기는 하나 그것은 나타나엘과 이야기하면서 부름)

베드로와 라자로의 경우를 보더라도 예수님께서 이름을 부르시는 경우는 매우 중대한 일이 있을 때에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무슨 증대한 일을 하시기 위해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당신은 부활하셨으며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나 곧 '너희의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분께 올라간다'는 것을 전하라는 분부를 마리아에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 중대한 일은 다름아닌 마리아의 역동성입니다.

본래 마리아가 원했던 것은 단지 예수님을 뵙는 데 까지였습니다.

뵙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 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뵙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지기도 하였지만 그와 더불어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그 충만함으로 이제는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알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마리아는 세상 끝까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전했을 것입니다.

 

저번달 대피정이 11일간 있었습니다.

사순시기여서 그런지 수난하시는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

 

마리아가 오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것은 예수님의 시신을 다른 곳을 모셔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묻히신 곳은  당신의 제자인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소유한 새무덤이기는 하나 처음부터 계획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그곳에 모신 이유는 그곳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있는 정원(동산)이었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은 안식일 준비일이었는데 또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덤이 가까이 있었으므로 그곳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제가 모셔가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는 것은 이미 마리아가 준비한 예수님의 무덤이 있었다는 애기기가 됩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서도 돌아가신 뒤에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마리아였던 것입니다.

그런 여인의 이름을 예수님이 부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감히 이름을 불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을 모실 곳이 마련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내가 예수님을 찾으러 가서 예수님을 찾는다면 나는 예수님을 어디에 모셔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한 마음속에 머물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의 맑은 정신 속에 머물 수 있도록 예수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