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중풍병자를 치유해 주시는 장면에서 율법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의아해 합니다.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수동형으로 "너는 용서 받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용서한다가 아니라 용서하는 일은 오직 하느님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더 견고하게 해 주시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이 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는 비단 율법학자들만 이해 못할 일이 아니라 그 집에 모인 군중들도 마찬가지로 이해 못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며칠 전에 시몬의 장모를 일으키듯이 중풍병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 간단할 것을 왜 하필이면 받아들이기 복잡하게'죄를 용서받았다'며 마치 하느님과 사전에 합의라도 본 것 처럼 말씀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일을 어렵게 만들어서 율법학자들의 빈축을 사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에관한 계명은 어렵게 말하면서도 인간에 해당되는 계명은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부모님께 바칠 공양을 애둘러 묵인하도록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평소에 하던대로라면 죄의 용서는 하느님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럴 때에는 어렵게 말해야했습니다.
즉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표현 대신에 애두른 표현으로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고 복잡하게 돌려가면서 말하는 것이 기본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죄를 먼저 용서해 주십니다.
그만큼 생명이 위독한 급한 상황이었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나 시급했으면 사람들은 남의 집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들것에 달아서 내려보냈던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과연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인 더 쉬웠을까? 하고 저또한 잠시 생각에 머물러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저와 가장 가까운 분들 중에도 중풍을 당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3분의 중풍 이야기 - 외할아버지/ 추천신부님/ 출신본당선배신부님
신체적인 중풍 초기증상 - 3가지 무기력증
웃음(미소)/대화(말)/팔(올림)
영적인 중풍 초기증상 - 3가지 무기력증
지성/의지/마음
여기서 지성의 무기력증(중풍)은 바오로인의 네(4)바퀴를 멈추게 함.
기도/공부/사도직/가난
이렇게 신체적인 무기력증과 영적인 무기력증은 곧 죄를 짓게 하고 우리의 생명을 위독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더더욱 요즘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질병을 가져다주는 일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점에 있어서 거룩한 영혼을 갈망하는 우리의 지성/의지/마음의 사도직이 이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우리는 우리힘만으로 죄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 또한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사도직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영혼이 거룩게되어 모두가 구원에 가까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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