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당 밖에서 처음으로 사목활동을 수행하십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사목활동 장소는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입니다. 거기서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시는데 먼저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십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에 그곳을 벗어나시어 외딴곳에서 기도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공생활의 시작을 세가지 구분되는 활동으로 진행하시고 마무리하십니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은 시몬의 장모를 먼저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시몬의 장모는 회당에서 나오시자 곧바로 고쳐주신 반면, 많은 사람은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고쳐주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어찌하여 누구는 회당에서 나오자 마자 밝을 때에 고쳐주시고 또 누구는 어두울 때까지 기다려서야 고쳐주실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생각해보면 이는 안식일 규정 때문인것 같습니다.
때는 안식일이었고 사람들은 그 법에 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절대적으로 일을 하면 안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식일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 저녁이 되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안식일 규정이 풀릴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식일 규정을 지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위험에 빠지면 지체하지 않고 구해주십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던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났으면 먼저 사람을 대피를 시켜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안식일이라도 먼저 건져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안식일이라도 고쳐주신 이유는 안식일에 사람들을 축복해주시기 위합입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당신 아버지의 뜻과도 일치하는 일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여섯째날까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에는 복을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쉬셨기 때문입니다.
이렛날을 거룩히 하시고 쉬신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복을 주는 것은 쉬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복주는 것도 힘듭니다.
제작년 첫미사 다닐때 ~~~
부산 남천동 스승예수수녀원에서
수녀님께서 바오로가족의 사제의 중요한 임무 한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창립자가 그렇게 하셨듯이 밤 9시가 되면 TV문을 열지말고 창문을 열고 세상에 파견된 바오로인들을 위하여 강복하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벌써 1년 5개월째입니다.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제가 무슨 일이든지 시작을 잘 안해서 그렇지 막상 시작을 하면 꽤 오래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강복하는 것도 힘듭니다. 힘들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힘듭니다.
정해진 때에 맞춰서 해야하기때문에 힘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신 후 다음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일어나 외딴 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마지막에 드리는 기도야 말로 하루 일과 중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고 귀찬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복된 일이 분명합니다. 태초에 하느님의 마지막 축복이 없었다면 인류의 삶은 참으로 볼품없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세번째 장면에서 기도하시며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향해 강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셨다고 하지만 사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강복하셨던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기도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축복받는 하루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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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1 [ 가족의 오해를 풀고 ] 마르1,29-39
내가 수도원 간다고 했을 때 모친께서 걱정을 태산같이 하신 적이 있다.
그 때문에 병은 나지 않았지만
늘 같이 지내던 자식이 어미를 떠난다고 하니
분명 밤잠을 설치며 서로의 앞날을 염려하셨으리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고기잡이를 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그물을 버렸다.
배와 그물만 정리해 버렸으면 좋았으련만 가족까지 버렸으니
베드로만 믿고 의지하던 식구들은 걱정을 태산같이 하며
어쩌면 예수님도 원망하고
혈육까지 외면해버린 베드로와 안드레아도 원망하며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떠날 때 가족간에 충분한 대화도 하지 못했지만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다행이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가서 대화를 나눔으로써
묶였던 가족의 오해를 풀고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를 일으키심으로서
그동안의 서운했던 감정도 풀려서
장모와 모든 가족들은 기꺼이 손님의 시중을 들수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모든 병자와 마귀들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동안에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었고
작은 힘이나마 기꺼이 병자들에게 쏟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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