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두 방법이 있습니다.
본질적 일치 -> 정통교리의 일치
의지적 일치 -> 네스토리우스적 일치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정통교리에 따라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일치 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은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성경 말씀을 활성화하시고
또 교회를 통하여 당신 몸과 피를 나누어 먹이심으로써 우리를 찾아 주십니다.
그리고 또한 교회를 통하여 당신 몸과 피를 나누어 먹이심으로써 우리를 당신 생명에 참여케 하십니다.
즉 빵과 포도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이심으로써 우리를 당신 생명에 참여케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 아들을 통해서 성령에 의해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즉 영성체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본질적으로 일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성체는 몇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요?
영성체의 방법으로는 ① 성체(聖體)만 영(領)하는 것, ② 성체를 성혈(聖血)로 축성된 포도주에 적셔서 영하는 것, ③ 성체를 영하고 성혈로 축성된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시는 것, ④ 성혈만 영하는 것 등의 4가지 방법이 있다. 로마 전례에 있어서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고(양형영성체) 신자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체만 영한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형상으로 영성체를 영해도 온전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신다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원칙대로 성체만 영해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이다.
즉 위의 네가지 방법 중에서 한 가지만으로도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일치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자 성찬례의 핵심입니다.
성전봉헌미사 성체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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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정통교리에 따른 본질적 일치에 이어서 두번째 네스토리우스적 일치인 의지적 일치는 어떤 것일까요?
이는 하느님이 어떻게 인간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또한 하느님과 일치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의 의지적인면을 통한 일치인데,
여려분은 식사할 때 수저로 국을 먼저 드시는지 밥을 먼저 드시는지 아니면 저범(저본/젓가락)으로 찬을 먼저 드시는지요???
아니면 수저로 밥을 떠서 국에 적신 다음 드시는 지요??? 복음서에 보면 조금씩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만찬때에 빵을 먼저 드시고 축복을 하신 다음에 잔을 들어 축복하셨다 하기도 하고(마태/마르)
예수님께서 만찬 때에 잔을 먼저 드시고 축복을 하신 다음에 빵을 들어 축복하셨다 하기도 하고(루카)
예수님께서 만찬 때에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제자에게 주시기도 합니다.(요한)
이렇게 복음서에서 다양하게 주님의 만찬의 양식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식사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살을 어떻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느냐를 놓고 유다인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벌어집니다. 오늘 이 장면의 반대되는 장면이 초대교회 때에 네스토리우스논쟁입니다. 네스토리우스가 하느님이 어떻게 인간의 음식(모유,젖)을 먹을 수 있느냐???하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느냐???에 관해서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을 다루는 내용입니다.
그만큼 먹는 문제는 중요하며 자칫 잘못이해 하게되면 다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인 우리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끊임없이 먹고 마셔야 한다는 것은 실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식탁만 보더라도 알수 있습니다.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죽어갑니까?
종교적으로 그것을 최소화 해보자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고기는 먹지 않고 풀만 먹는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식물의 죽음이 동물보다 하찮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식탁은 무수히 많은 생명체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비참함의 잔치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양식으로 먹고있는 모든 생명체는 살생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살생을 한다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입니까???? 정당하지 않다면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을까요?
죽이는 일이 과연 올바르고 선한 일이 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최소화"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으로 살생을 초윤리적으로(신적으로) "최적화"해보자는 것이 삼위일체 교리이면서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을 먹고 마시는 "테오토코스"교리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본능적, 의지적으로는 아무것이나 먹을 수는 있어도 본성적, 신적으로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인 당신의 살과 피는 우리 영혼의 양식이자 생명의 양식입니다.
매일 차려지는 비참한 죽음의 식탁을 생명의 만찬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합니다.
그리하여 죽음으로 얼룩진 인간의 비참한 품위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거룩하고 깨끗하게 바뀌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더이상 먹고나서 찜찜한 본능적인 식탁이 아닌, 그분으로 인해 모두의 죄가 사해지는 본성적이고 의지적인 성찬의 제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식사전기도를 꼭 하십니까?
저는 수도원 들어와서도 얼마 동안은 바깥에서 식사할 때에는 성호를 긋지 못했습니다.
식사전 기도를 떳떳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식사가 그저 습관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먹는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배고파서 먹는 줄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사 전에 무어라고 기도하십니까?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또는 "주님 당신을 거룩하게 섬기기 위하여 먹고자 하는 이 음식과 저희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예수님, 당신은 미사성제 안에서 쪼개어진 빵이시니 당신 생명으로 저희를 영적으로 양육시켜 주시고 날마다 당신 섭리로 주시는 음식을 사랑 안에서 나눌 수 있게 하소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래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두 번째 방법인 의지적 일치는 식사 전 기도를 바침으로써 이루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저는 제가 먹었던 식사가 그저 단순한 본능적인 습관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식사 전 기도는 나약한 우리의 육신이 이제 곧 먹고자 하는 음식과 우리 자신을 당신의 거룩하신 희생과 부활의 힘으로 우리를 양육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하느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의지적 일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일치하는 두 가지 방법인 본질적 일치와 의지적 일치는 성찬례와 만찬이됩니다.
즉 영성체와 식사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에게는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는 영성체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의지적으로 일치하게 되는 매일의 식사 또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6,55)
오늘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일치하여 영원한 생명을 받고 또 그 생명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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