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아름다움은 어떻게 다를까요?
꽃 봉오리가 수줍게 여미고 있으면 부끄러움이고
꽃이 하얗게 활짝 피면 아름다움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사실 백날 기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밖에 핀 벗꽃이며 하얀 목련이 다 떨어지기 전에 꽃구경 한 번 못간다면
앉아서 백날 기도바치며 머리를 쥐어 짜는 것보다 활짝 핀 꽃을 바라보는 것이 영성생활에는 훨신 더 유익합니다.
그래서 봄꽃이 활짝 필 대에 드리는 짧은 기도와 짧은 강론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움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 여기는 자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의 기도 즉 바리사이의 기도는 자신을 높이는 기도로 그리고 이어지는 세리의 기도는 자신을 낮추는 이의 기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람의 속마음 까지 다 아시는 분 답게 비교적 두 사람의 기도 내용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습니다.
기도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사회비판적인 기도를 하였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멀찍이 서서 고개를 숙인채 가슴을 치며 자기 비판적인 기도를 하였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리사이의 기도 모습입니다.
오늘 바리사이가 드린 기도는 사회고발적인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의 기도가 잘 못 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러한 대의적인 기도를 드린 목적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 뒤에 숨어있는 목적을 성취시키려고 의도적으로 이웃의 잘못을 들추어 낸다는 점입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니까 자기 정당화를 위해서 대의적인 비판과 고발을 한 샘입니다.
이렇듯 바리사이는 이웃들의 불충실함을 비판적으로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지만 그 다음에 오는 자화자찬하는 감사기도에서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자기는 충실히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저 사람은 더욱 꼴불견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바리사이는 저~ 애 탓이오! 저~ 애 탓이오! 하는 반면 세리는 제 탓이요! 제탓이요!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늘 하루 남의 탓을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보기를 바라십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사람이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로 의로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한 주간을 잘 마무리하여 다시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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