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사순제3주간 수요일 마태5,17-19 보이지않는 계명(딸)

jasunthoma 2014. 3. 26. 03:58

여러분들은 사순시기를 보내시면서 작은 결심같은 것을 하나쯤은 다들 하셨을 텐데요??

3월 5일이 제의 수요일이었으니까 오늘이 사순시기 21일째 되는 날입니다.

사순 중반을 지나면서 내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 그리고 그 결심을 얼마나 지켜왔는지를 잠시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지금까지 개인 운동은 방안에서만 했슴. 운동장으로 나가서 운동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슴)

그래서 중간에 하다가 그만 할까봐 이미 접수를 해 뒀습니다.

하프 코스까지만 뛰는 평화마라톤입니다.

그런데 연습하다가 포기할까봐 요즘에는 드러나게 이야기 하고 다닙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내가 뛰면 심장이 뛴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안 뛴다고 내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뛰지 않으면 나는 심장이 뛰는 것조차 모르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가장 작은 계명은 무엇일까요?

과연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고 규정할 수 없는 계명이 있다면 뭘까요?

그것은 양심의 계명이 아닐까요.

양심은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모두 지키기를 바라십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은 모두가 규정이고, 규칙이고, 법령이고, 규제하는 조항들입니다.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로 보이는 이러한 법령과 충고의 말씀들을 어떻게 하면 폐지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폐지한다는 것은 더이상 규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켜져서 저절로 없어져버리는 것입니다.

즉 완성한다는 의미는 지켜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정은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입니다.

양심에 걸리는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꼼꼼하게 지켜나갈 때

지상생활에서는 작은 사람이라고 놀림을 받을지 몰라도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 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양심은 으레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해도 그만 않해도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율법의 완성은 이 보이지 않는 계명인 양심을 지킬 때에 비로소 완성에 이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규정 중에서 양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일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스스로 지켜서 보이지 않는 계명인 양심을 완성시켜 날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