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면 군대가 떠오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군대 갔다 왔을까요? 안 갔을 까요? 흔히 우리가 병역의 의무 혹은 국방의 의무에 관해서 말할 때에 세 부류로 말합니다. 1. 사람의 아들, 2. 장군의 아들, 3. 신의 아들.
다시 말하면 군대 갔다온 사람, 그 중에서도 1. 현역제대 한 사람을 일컬어 "사람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2. 방위제대 한사람을 일컬어서 "장군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3. 미필, 즉 군대 안 간 사람은 "신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러지는 않았을텐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일컬어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잠시 곡해해 보자면 예수님은 즉 자칭해서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군대 갔다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현역으로 갔다왔노라고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베드로 신앙고백은 그렇치 않다고 반박합니다. 예수님은 아예 군대를 면제받은 신의 아들 즉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일행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으로 가십니다.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은 헤르몬산 입구가 있는 지역입니다. 헤르몬 산의 이름은 "금기" 또는 "봉헌"을 의미하는 셈어 어근 하름ḥrm과 "신성한 울타리"를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 알-헤람al-ḥaram과 관련이 있어서 "신에게 바쳐진 곳"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한 헤르몬 산을 향해 가시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갑자기 자신이 누구냐고 당신의 신원을 묻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사회 통념에 따라서 예수님을 단순히 랍비, 즉 스승님이라고만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렇게 남들이 부르는 대로 부르는 것이 합당한지에 관하여 생각해 보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늘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부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나는 너에게 그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늘에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람의 아들이심에 만족하시기 때문이십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이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신반인의 아들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당신을 일컬어서 당신 스스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부른다면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이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아직 완전한 사람이 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아들로 파견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교회의 반석이라는 명칭을 부여해 주신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따지고보면 교회의 반석인 베드로 좌는 편안하고 푹신한 자리가 아닙니다. 돌방석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딱딱한 돌방석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교회의 일에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자리에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습니다. 딱딱하고 차갑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애당초 앉아있기위한 자리가 아닙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좌라는 자리는 항상 일어서서 교회에 봉사해야하는 자리입이 분명합니다. 사무직이 아니라 현장직이며 거추장 스러울 정도로 치장한 옷이 아니라 봉사하기 알맞은 앞치마와 토시가 더 필요한 자리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는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양떼를 잘 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왕 할거면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하며 열성을 다해 봉사여 양떼의 모범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열쇠를 하나 주시며 이 열쇠, 즉 하늘나라의 열쇠는 하늘을 여는데만 사용되지 않고 땅에서도 쓸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디 이 열쇠는 하늘나라의 열쇠인데 이 열쇠 하나로 하늘도 열고 땅도 열고 하늘도 닫고 땅도 닫습니다. 하늘에서도 통하고 땅에서도 통하는 유일한 열쇠는??? 봉사라는 열쇠가 아닐까합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 하늘나라의 열쇠/ 봉사의 열쇠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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