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6주간 금요일 마르8,34-9,1 유종의 미(딸)

jasunthoma 2014. 2. 21. 04:46

부끄러움과 아름다움은 어떻게 다를까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가 에 따라

그리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가 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은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가 유종의 미를 거둔것 같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십자가는 사실 부끄러움 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십자가를 지고 바둥 거리는 모습을 보일때에 한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진 십자가를 놓아버릴까 하고 망설이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필 때에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내가 진 이 십자가가 합당하냐고 끝임없이 묻는다면 몰라도 내 의지로 십자가를 이리저리 저울질 하여 마지 못해 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정말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제 십자가만 보면 부끄럽습니다. 창피합니다.

십자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도 형제도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없습니다.

또 있으면 뭐합니까? 연락도 안오고 연락도 안하는데. . .

십자가가 없으니 하는 일도 싱겁고 죽기 살기로 하지도 않습니다.

행여 그러다가 정말 죽을까봐 살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겉으로 보면 사실 저보다 더 부끄럽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저는 아직은 못박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십자가를 잠시 잠깐 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제 3처 첫번째 넘어졌음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넘어진김에 아예 쉬었다 일어나려고 엎드려 묵상하다가 지금은 잠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찌보면 은빛 십자가 메달보다 황금빛 둥근 메달을 갈망합니다.

모난 것 보다 둥글둥글한 것을 차가운 것 보다 따뜻한 것을 더 좋아 합니다.

하지만 황금빛 메달은 부러움을 유발하여 시기심과 분열을 가져다 주지만 은빛 메달은 일치와 화합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 황금빛 메달이 가지지 못한 너그러움으로 온 세상을 다 품을 넉넉함을 가져다 줍니다.

 

온 세상을 다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소금 인형이 바다에 자신을 녹임으로써 바다가 되었듯이 우리가 세상을 다 가지려면 온 세상에 녹아 세상이 되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온 세상을 얻었더라도 인간은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공덕을 주님께 바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세상에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에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고 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 세상의 모든 지혜와 지략, 축복과 저주, 아름다움과 부끄러움, 넉넉함과 부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알려주셨고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오늘도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내 십자가의 길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