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23주간 금요일 루카6,39-42 주님의 그림자-(딸.명동)

jasunthoma 2013. 9. 13. 05:50

어렸을 때 추석명절이 오면 아이들끼리 하던 놀이중에서 그림자 밟기 놀이가 있습니다.

보름 달이 뜨면 서로 상대방의 그림자를 먼저 밟으면 이기는 놀이입니다.

빛과 그림자 사이에 사람이 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빛과 그림자 사이에 우리의 스승이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먼이가 눈먼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스승처럼'은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인처럼~ 이라고 할 때 긍정적인 의미로 이야기되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바리사이처럼~ 이라고 할 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스승처럼'의 '~처럼'은 긍정적인 표현으로 다가오지 않고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다 배우고 나도 스승만큼 밖에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승처럼 되었다고 해서 자신이 스승이라고 착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스승은 아닙에도 불구하고 스승처럼 살고 행동하는 제자들이 생겨남을 우려하고 계십니다.

그 때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아니라 위선자인 바리사이들이라 불려질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살펴보면 세례자 요한과 요한의 제자들

그리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과 그들의 제자들

또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마지막으로 오늘날 봉헌의 삶을 살고있는 우리들의 인격적 선임과 후임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을 떠올려 볼 때 삶의 지헤와 경륜으로는 결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은 스승님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그림자를 밟지 그림자가 사람을 밟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배우고 나면 스승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스승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스승일 수는 없습니다.

인류의 스승은 단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단지 이 몸은 종입니다.

제자는 저는 그저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주님의 종으로 남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사람들이 '저 제자는 예수님을 닮았네'라고 기뻐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그림자 처럼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