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23주간 화요일 루카6,12-19 응답신앙-(협.서,둘째모임)

jasunthoma 2013. 9. 10. 08:01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 명절이 되면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어떤 일들이 기억에 남아있습니까?

저는 참으로 심부름을 많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종일 담배심부름 술심부름 식재료 심부름...

부르면 불이나케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던 많은 무리중에서 열둘을 호명하십니다.

그들의 이름은 베드로라고 불리게 된 시몬, 야고보, 요한, 안드레아,바르톨로메오, 필립보, 마태오, 토마스,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이스카리옷 사람 유다 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예! 여기에 있습니다"하고 그분께로 나아왔습니다.

사제의 서품식에서도 그렇고 수도자들의 서원식에서도 부르시고 응답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절차에 속합니다.

부르시지 않는데 대답을 한다거나

응답도 않했는데 축복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기 위해서는 절차에 따라서 그에 합당한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또한 부르심을 받기 위해서는 그 모임을 나갈 수 있도록 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동안 마음에 간직했던 결심들을 충실히 지켜나갈 것을 다짐하는 응답을 발하는 것이다.

 

이제 며칠만 더 지나면 추석명절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추석 명절에는 식구들이 좀 모이나요??

요즘은 예전만큼 가족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아주 시끌벅적하게 모이는 경우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것 같습니다.

어딜가나 가족들이 많이 모이면 흥겹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다보면 심하지는 않지만 다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심하게 다투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기쁘고 즐거운 좋은 마음으로 오랜만에 만났는데 헤어질 때에는 무거운 마음으로 속상해하면서 헤어질 까요?

응답에 소홀해서 그렇지 않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응답하듯이 온전히 충만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응답하지 않아서 그런 불편한 관계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가톨릭은 전적으로 응답의 신앙입니다.

응답의 신앙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들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대답을 발하고 즉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 큰 무리의 제자들 중에서도 12명은 사도로 불리움을 받았고 그들은 기쁘게 응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곁에서 늘 함께 생활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축복 뿐만 아니라 반대파들의 저주도 함께 받아야 하는 어려움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반대파들은 차츰 12사도들을 예수님과 떨어지게 할 것이고 서로 분열을 일으켜 싸움을 부추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리움을 받고 응답할 때 받은 은총을 묵상하면서 앞으로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것입니다.

열 두 사도들 중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 말고는 아무도 예루살렘에서 죽지 않았습니다.

사도로 불리움을 받는다는 것은 불리움을 받고 응답을 하는 삶을 사는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응답한다는 것은 밖으로 나간다라는 의미로 파견한다라는 말입니다.

사도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아포스텔로(apostello)파견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불리움을 받은 그 상태로 눌러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미사를 몇 군데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첫 미사를 다니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불리움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가운데로 그리고 맨 앞자리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우들이 어떻게 합니까?

올려주고 칭찬해주고 떠받들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이참에 여기에 눌러앉아버릴까?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꽃방석에 앉았는데 마다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열 두 사도들 중 유일하게 예루살렘에 눌러 앉은 사도는 유다 이스카리옷 밖에 없습니다.

모두들 땅끝까지 파견되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새로운 예루살렘을 봉헌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될 때의 일들을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대부분의 고통과 절망들은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돌이켜 보면 내가 행복하지만 행복함을 돌이키지 않아서 내 인생은 왜이리도 고달프냐고 하소연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의리가 있으시고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응답 신앙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