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학교끝나고 돌아갈 때에 문방구에서 뽑기에 정신이 팔린 적이 한두번 아닙니다.
지금생각하면 뭐 대단한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열을내며 열심히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 때에 뽑기를 뽑을 때 왜 그토록 내 것만을 뽑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때는 옆에 서있는 친구나 짝궁의 것도 하나 뽑아주지 못했을까하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듭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뽑기를 원하고 뽑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죽기까지 도대체 몇 번이나 뽑거나 뽑혀여 만족을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께서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을까요?
스승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한 번 더 뽑히기 위해서였습니다.
뽑혀서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였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은 많은 제자들 중에 열두 제자로 뽑혔고 또 그 전에 먼저 네 제자로 뽑혔던 경력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청하기만 하면 못 뽑힐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코 그들이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보다 못할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전권을 잡기 전에 물밑 작업을 확실히 해 두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어머니까지 가세했습니다.
자기의 두 아들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중히 사양하십니다.
흔히 우리는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것이 고관들이나 통치자들이 누리는 영광스런 자리쯤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그 자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기도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의 말씀을 뒤 늦게 깨달았는지는 몰라도 야고보 사도는 첫번째로 예수님의 수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동생 요한은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요한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두 형제의 일생을 통해서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의 의미를 다시생각하게 해 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다고 사도바오로는 말합니다.
그 보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나를 뽑기보다 형제를 뽑아주는 마음은 분명히 형제를 위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양보하고 내어주는 마음은 우리 안에있는 보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청하는 모든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오늘 하루를 예수님 안에서 뽑히기를 바라는 우리 마음에 형제를 배려하는 보물을 잘 지니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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