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하고 모세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니 이 삼대를 일컬어 이스라엘의 선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이 삼대만을 하느님과 관련지었을까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에서는 40대에 걸쳐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언급되고
루카복음은 그보다 더 많은 조상들이 언급되는데 어찌하여 모세는 하느님을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만을 관련지어 불렀을까요?
모세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이 야곱에 이르러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느님의 약속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만큼 많은 자손들을 보게 해 주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삼대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곱은 두 아내와 두 몸종으로부터 아들 열 둘을 낳았습니다.
이 열 둘의 아들은 이스라엘의 열 두지파를 이루었고 그 자손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 자신은 그의 자식들이 죽을 나이가 가까워질때까지 147년간을 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내려주었습니다.
특히 아들 요셉과함께 이집트에 17년간을 살면서 이집트의 파라오까지 축복해 주었습니다.
온 세상에 하느님의 복을 베풀어준 것입니다.
더불어 모세는 떨기나무 곁에서 이미 죽은 선조들의 이름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되었을 때에
하느님은 더이상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깨닫게되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으시는 분께서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더불어 천사와같은 모습으로 다시 살아난 그의 조상들의 모습을 보게된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은 특정인에게 부여된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그 주변국 사람들은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대를 끊임없이 이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인위적으로 대를 잇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큰 죄악이며
어쩔수 없이 대를 잇지 못하는 경우라도 그 사람 마음은 상처로 얼룩져 벌을 받은 사람보다 더한 죄책감에 빠져 살아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믿는대로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도, 우리의 자녀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끝까지 하느님의 축복은 우리 선조들을 통하여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의 약속이 지금도 지속되고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모든 생명에게 축복을 베풀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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