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가 뭘까요?
예수님께서 자꾸 진리 진리하니까 심판자 빌라도가 예수님께 그럼 진리가 무엇이오? 하고 물었던 그 장면을 떠올려봅니다.
여러가지 진리적인 요소가 떠오르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하나라는 겁니다.
곧 하느님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진리를 설명하는데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할 뿐입니다.
그 하나의 진리를 설명하는 방법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를 떠올려봅니다.
천상의 진리와 지상의 진리 즉 신적 진리와 인간적 진리입니다.
신적 진리는 본문11절에서 알 수 있듯이 삼위일체일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처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과 아버지 그리고 성령의 현존을 암시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삼위의 현존보다 삼위의 일체 즉 일치의 측면에 더 신중히 머무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일치를 하면 성령또한 그 속에서 일치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간적 진리입니다.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도 바오로의 생각에 비추어 볼 때
만고불변의 인간적 진리는 우리는 떠난다는 것이고 떠나는 존재라는 점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세상에 잠심 머물다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이치입니다.
제가 서품성구를 정했는데요
궁금하지 않으시겠지만 오늘 복음묵상을 더 깊이있게 해 주기 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편 84,6의 행복하여라 당신께 힘을 얻어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 입니다.
순례길을 떠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행복합니까?
단 하느님께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럴때에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에게는 돌밭길도 행복한 길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행한 것은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스스로 떠났기 때문에 줄 것이 없는 겁니다.
줄것이 없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겁니다.
그러니 진리를 간직한 사람은 아무리 세상이 돌밭길 가시밭길이라도 행복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파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고생시키려고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게 살라고 보내셨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처럼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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