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아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못 보았는데 어떻게 아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안보고도 믿을 수 있어야 참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고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도 믿지 않는데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안 보고 믿을 수 있으려면 그분의 음성이라도 들어야 합니다.
그분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분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음성은 말씀을 보고 말씀대로 실천할 때에 들립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듣으려면 아버지를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아버지를 몇번이나 불렀을까요?
부르지도 않는데 대답할 리가 없는 겁니다.
헛기침이라도 하시게 하려면 아버지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빈말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간곡히 불러야 합니다.
빈말로 부르는데 믿음일 갈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도 안가는 분의 이름을 간곡히 부를 수는 더 더욱 없을 것입니다.
빈말로 부르는지 정말 간곡히 부르는지는 누구보다도 부르고 있는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이렇게 살아서 믿는 이는 이미 부활 신앙에 참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마지막 종말이 아닙니다.
우리 육신의 죽음은 아버지의 뜻에 의하면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신앙인이 하고 있는 큰 착각중의 하나가 죽음 뒤에 오는 부활 신앙에 대한 괴리감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나 하시는 영광이지 나같이 하찮은 존재가 무슨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라는 좌절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부활합니다.
육신의 죽음은 단지 부활신앙의 시작일 뿐입니다.
모두 부활 한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 때에 아들을 보고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일입니다.
살아 있을 때에 믿지 못했는데 어떻게 죽은 뒤에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날에 믿는 이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날은 육신이 죽는 그 날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우리의 종말입니다.
그 때에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날입니다.
오늘 하루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간곡히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한머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해 부활제3주간 금요일 요한6,52-59 생명의 생명 (0) | 2013.04.19 |
---|---|
다해 부활제3주간 목요일 요한6,44-51 천상의 빵 (0) | 2013.04.18 |
다해 부활제3주간 화요일 요한6,30-35 말씀의 빵 (0) | 2013.04.16 |
다해 부활제3주간 월요일 요한6,22-29 영혼의 빵 (0) | 2013.04.15 |
다해 부활제2주간 토요일 요한6,16--21 기도의 목적지 (0) | 2013.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