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중에 첫째는 수를 누리는 것으로 오래오래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살던 시골에는 환갑 넘기신 분들이 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환갑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요즘은 칠순 팔순도 넉끈한 어르신들이 차고 넘칩니다.
반면에 대가 끊기는 경우가 흔합니다.
대대 손손이라는 말이 이제는 부담스럽게 들릴정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 부친은 육남매를 두시고 환갑전에 돌아가실 때에 어머니께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회초리를 하나 끊어다가 분지르면 쉽게 부러지지만 여섯개는 쉽게 부러지지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접시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죽음은 언제나 우리곁에서 우리의 삶과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예수님의 말을 지키면 죽음을 보지않을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제1독서에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면서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로부터 많은 자손들과 많은 민족들이 아브라함의 한 자녀들로서 대대손손 번성하고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게될 유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구원은 단지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대에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적성이 풀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언자가 나타나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말만하거나 능력이 없거나 그들이 원하는 기적들을 일으키지 못하면 돌을 집어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도 그들은 그 무능력자에게 죽음을 맛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이 머물러있어 언제나 생명이 흘러 넘쳐야 할 성전에 죽음이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내가 살아서 죽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살아있으면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살아있는 말씀을 몸소 보여주십니다.
말씀이 살아있음을 본 사람은 살아도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고 죽어도 결코 죽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안에서 영광을 누리는 아드님의 말씀이 대대손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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