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5주간 월요일 마르6,53-56 만물의 선용(성바)

jasunthoma 2013. 2. 11. 07:07

 예전 시골 장터에가면 "만물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철물점으로 부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번은 한복 옷깃에 덧붙이는 하얀 동정을 사야 했는데 한복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만물상을 가서 물어보니 거기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찾다가 못찾으면 만물상에 가서 물어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장터에서 당신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하필이면 장터일까요?

얼마전에 집이나 회당에서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으니 이번에는 당연히 장터에서 치유하셔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치많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로 데리고 왔을 때에 그들은 예수님의 몸이나 손 또는 발에 직접대지 않고 옷자락 술에 손을 대고자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무덤에 묻혔던 라자로를 살려내시고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손길이 닿지 않고 말씀만으로도 구원이 된다면 손길이 닿는다면 더할 나위없이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몸과 말씀이 아니라도 옷깃만 스쳐도 구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병자들의 소중한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게 된것은

옷이 그들을 그렇게 한것이 아니라 그 옷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그 안에 계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안에 계시기만 한다면 그것이 실 한올만큼 가늘어도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기 위합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 만물이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듯이

사람이 사용하는 세상 만물도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선용하기만 한다면 병든이들의 손이되고 발이되어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도구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눞혀 회당이 아닌 장터로  데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훌륭한 보석으로 치장한 에봇을 닳토록 만진다 하여도

그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사용하는 세상 만물안에서 하늘나라의 복음이 베어나올 수 있도록 만물을 선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