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1주간월요일 마르1,14-20 제자의 공생활(스승)

jasunthoma 2013. 1. 14. 03:34

3년간 부산에 머물면서도 어디 밖같을 나가 돌아다녀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강에도 자전거 길이 있지만 부산에도 자전거 길이 잘 발달되어있습니다.

온천천을 타고 내려가다보면 수영강과 합류하는데 강 끝자락에 광안리 해변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대를 지나 신선대 오륙도 태종대 남항대교까지 쭉 지나갔습니다.

멋있습니다.

그런데 강변이나 해안길을 가다보면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특징적인 풍경이 있습니다. 

부산에는 낙시꾼들이 많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바닷가 경치도 좋지만 쉬엄쉬엄 가다가 낙시꾼 아저씨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가 소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하는 말들이 많이 못잡았다는데 일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모두 호숫가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 같으면 한 번은 호숫가에서 뽑고 한번은 농장이나 마을 가운데서 뽑아서 누가 보더라도 첫 제자인만큼 편중되지 않게 골고루 뽑았다는 인상을 받도록 했을것 같습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제자들을 호숫가에서 일하던 어부들 중에서 뽑습니다.

그런데 갈릴레아 언덕위에 포도밭도 있고, 목장도 있고, 마을 한 가운데에 회당과 시장도 있었을 텐데 왜 호숫가를 선호하셨을까요?

그것도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번씩이나 연속적으로 호숫가에서 어부들을 택하셨을까요?

어부라는 직업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불안하고 위험한 직업입니다.

직업이 불안하고 위험하면 소득이라도 충분해야할텐데 그렇지도 못합니다.

오늘 이정도 잡았으니 내일은 어느정도 잡히겠구나라는 계획은 아예 세울수도 없습니다.

물고기들이 생각대로 잘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숫가는 불안한 경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대표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는 어부들 중에서 네명이 오늘 예수님의 첫 제자들로 발탁이 됩니다.

그들은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낚았으나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서 사람을 낚으신 것이지요.

불분명한 경계에 머물러 있던 제자들을 분명한 삶에로 초대하신 겁니다.

불확실한 삶을 살던 그들을 확실에 찬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공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이미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갈릴레아에 가시어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는 제자들이 없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없이 복음선포를 하셨습니다.

물론 제자를 뽑으신 뒤에도 언제나 예수님은 혼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활은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어부들이 바다에 그물을 던질때보다 더 불안했고 불분명했습니다.

얼마동안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인성이 온전히 죽으실 때까지 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다음 다시 살아나실 때까지였다는 것을 흔히 들어왔기에 이제 그리 놀라지도 않습니다.

오늘 선택된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그러한 삶을 닮을 것입니다.

인간 베드로가 온전히 죽고, 안드레아의 인간성이 온전히 죽을때,

인간 야고보가 온전히 죽고, 요한의 괴팍한 성질이 온전히 죽을 때에 예수님의 공생활은 비로소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언제 죽었었는지를 살펴보고 예수님의 공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