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의 혼인과 새 하늘 새 땅의 올바른 이해
요한편지묵시록/ 연구2년/ 20109101/ 김용석
“안과 밖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모두 함께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사랑의 드러남, 피조세계의 상태로서의 사랑, 내면성과 개방성의 일치, 이것이 하늘이다. 그리스도가 이 모든 것을 이룩한다. 묵시록에 나타나는 그분의 최종적 형태는 신랑이다.”1) 이 말씀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신천지 예수교”의 편협한 묵시록 해석에 일침을 가하고 올바른 성경 해석에 방향을 제시한다.
‘신천지교’의 잘못 된 묵시록 해석은 묵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 새 땅인 새 예루살렘(=신천지)이 15장에 나오는 “증언의 천막 성전”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있다. 좀 더 나아가 구원받았다고 주장하거나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기성교회들에 맞서 말씀을 증거하는 자(예언자)야말로 계시를 받은 자이니, 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이곳(신천지 예수교)로 빨리 오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기성교회 밭에 남아있는 사람은 유황 불 못이 있는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한다는 점에 있다.2)
하지만 최종적인 어린양의 혼인날에는 하느님께서 직접 다스리신다(19,6). 왜 그럴까? 데이비드 E. 아우내의 주석에 의하면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어린양의 혼인날 신부가 될 사람의 몸단장에 어린양의 개입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하느님의 관대하심으로 인간적인 측면에서보다는 하느님의 편에서 당신의 아들(그리스도)로 드러나는 ‘초인간적이고 탈인간적으로 올바르게 표현 가능한 어린양’3)이라는 대상을 통하여 불륜으로부터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봉인시켜주심을 주지하는 것이다.4)
그 신랑인 어린양을 통하여 신부 또한 거룩하게 몸단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19,8). 이 고운 아마포 옷은 희생 제물로 만든 것이 아닌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하느님과 어린양의 도성인 예루살렘처럼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불륜의 옷이 입혀지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멀리하고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한 성도들이 어린양을 통하여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으로서의 신부는 몸단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신부의 몸단장은 보석으로 치장된 지상의 도성이 아닌 새 도성인 천상 예루살렘인 것이다. 이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과 어린양이 성전 자체이시기 때문이다.5) 그러므로 신랑을 향해 나아가는 신부는 그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오십시오, 주 예수님!”(22,20)의 ‘기다림’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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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노 과르디니, 『주님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인물』, 남현욱 · 박재순 옮김, 바오로딸 1995, 774-775.
2) <출처>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05161 - 2011년 11월 23일 (수) 10:15:41 김지현 기자 kjh@newscj.com
3) 로마노 과르디니, 위의 책, 721 참조.
4) 성경 세계에서 ‘어리다’는 의미는 ‘어린이처럼(마르 10,15)’ 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 구원에 이르기 위한 필수 조건이므로 성경에서 어린이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자들이 아이들을 스승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스승에 대한 존경심의 의미의 외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특별히 성조들의 전승과 사무엘기 상 ‧ 하권의 계승 이야기에 나오는 어린이에 대한 호의는 분명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엘로힘계 편집 본문(탈출 2,2; 창세 21,16)은 자연스럽고 여린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작고 예쁘고 힘없는 피조물이 불러일으키는 모성적 사랑과 부드러움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해석되어야 한다. - P.로싸노 ‧ G.라바시 ‧ A. 지를란다 외, 『새로운 성경 신학 사전 2』, 임승필 외 옮김, 바오로딸 2009, 1531-1542 참조.
5) 로마노 과르디니, 위의 책, 77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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