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22주간 수요일 루카4,38-44 거룩한 열정(230906 리디아// 240904 스승, 행운동성당)

jasunthoma 2023. 9. 4. 09:0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하고 전해줍니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는데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렸다고 하자 예수님이 열을 꾸짖으시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열을 꾸짖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라 열을 꾸짖는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흔히 누군가를 꾸짖는다함은 그 대상은 분명히 그 꾸지람을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지성을 갖춘 사람일때에 꾸짖게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열을 꾸짖습니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대뜸 열을 꾸짖으셨는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셨다입니다. 저 멀리서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가까이 가시어 꾸짖으십니다. 그리스어 본문에 가까이 가시어는 에피스타스έπιστάς입니다. 에피스타스는 중지하다, 정지하다, 걱정하다, 주의하다, 조심하다 등의 의미가 있지만 스페인어 번역본들은 이 단어를 인클리나inclinar, inclinado로 번역했습니다. 인클리나르는 기울이다, 비스듬이 경사지게하다, 굽히다, 구부리다, 찬성하다, 편들다, 닮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열을 꾸짖으시기 전에 무엇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시몬의 장모 곁으로 가셨습니다. 가까이 가셔서 어떻게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경사지게 하고, 기울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몸과 머리를 굽히고 구부렸던 것입니다. 심한 열에 시달리던 시몬의 장모님 곁에서 중지하고 정지하고 걱정하고 주의하고 조심하면서 경사지게 기울여서 편들고 찬성하고 닮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심한 열이 시몬의 장모에게서 달아나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꾸짖으신 그 열, 시달렸던 그 열은 과연 무슨 열이었을까요??? 아 열받네 할 때에 그 열 도대체 그 열의 정체는 뭘까요??? 어떤 열이었길래 꾸짖는다고 가라앉았을까요??? 열이 가셨다에서의 열은 그리스어 성경에 푸레토스πυρετός입니다. 푸레토스의 원형 푸르πρ는 불꽃입니다. 불꽃인데 그냥 불꽃이 아니라 화장할때의 불꽃, 살라바치는 번제물의 불꽃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을 꾸짖으실 때에 그 열은 단순한 일사병이나 열병의 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한 단순히 심리적 불편함에서 발생되는 체온이 상승된 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언가 신성하고 거룩하고 경외로움에 벅찬 상태에서 나타나는 불꽃과도 같은 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열병과 관련된 이야기가 여러장면 나오는데 푸레토스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모두 여섯차례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몬의 장모님 이야기를 전해주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에서 각각 한차례씩 나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52에서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실때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할 때에 한 번 나오고, 사도행전 28,8에서 바오로가 마지막 목적지인 로마로 가던 중 배가 파선되어 몰타섬에 머물 때 인근 섬의 수령인 푸블리우스를 열병에서 고쳐줄때에 한 번 나오고, 여섯 번째 2티모1,6에서 사도바오로가 티모테오에게 감사와 격려를 하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불태우십시오라고 할 때에 불태우다에 마지막으로 한 번 나옵니다. 그렇다면 마태오 마르코 루카복음에서 공동으로 등장하는 시몬 장모님의 이 열은 단순한 열이 아니라 무언가 거룩한 열정이 차고 넘칠 때에 나타나는 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열을 꾸짖으셨다는 겁니다. 구약의 예레미야도 그 열정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20,9)

 

이처럼 열이 그러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시몬의 장모가 열이 나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무슨 일을 했길래 심한 열이 났던 것일까요??? 혹은 무슨 일들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런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저렇게 해서 무슨 일이든지 계획대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아무런 일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거룩한 열정 때문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의 능력과 건강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언가 정리되고 정돈되어 정숙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차분하고 평화롭고 절도있게 그러나 거룩하게 일 처리를 하고 싶은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못합니다. 열받아서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아수라장처럼 보이니까요. 거기에서 무슨 거룩하고 신성함이 일어나겠냐는 겁니다. 나이도 있고 체면도 있으니까 쉽게 화도 못내고 전전긍긍하면서 손도 못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자니 체면이 안서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힘도 부치고, 또 누구를 시키자니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그러한 거룩한 열정이 일어나는 시기가 시몬의 장모님과 같은 시기라는 겁니다. 시몬의 장모는 어느정도 연령대였을까요? 40, 50, 60, 70, 80, 혹은 90... 아무리 연령이 젊었을 것으로 추정해도 최소한 50대 이상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베드로가 예수님보다는 나이가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50대이상 60대 혹은 7-80대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그 의미는 베드로의 장모님은 이미 사회적으로 연로한 상태에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연로하신 분이 거룩한 열정에 눌려 꼼짝 못하고 침상에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열을 꾸짖으시자 아프던 몸이 낫고 열이 내렸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들었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연로하신 분이 열이 가시자 곧바로 일어나서 시중을 들었던 것입니다. 누구를 시중 들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분을 따르는 이들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무슨일이 일어납니까??? 이어지는 오늘 복음 본문에 의하면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게 됩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고 했습니다. 업친데 덮친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그들을 고쳐주십니다.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는 열 두제자들 시중도 못들었지만 그 열정이 가시고 버려지고 나니까 어떻게 됩니까??? 갖가지 질병을 앓는 다른 이들을 있는대로 모두 고쳐주시는데에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몬의 장모님이 열이 가시고 나니까 그곳은 어떻게 된 겁니까??? 경건한 장소가 아니라 북적이는 장터가 된 겁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처럼 야전병원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병이 낫고 고침을 받은 이에게서 마귀들이 나가면서 어떻게 합니까???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렇게 되니 그들을 모두 고쳐 보내고 나서 예수님께서 외딴곳을 찾아 떠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외딴 곳으로 가시어 머물렀던 이유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돌이켜볼 수 있습니다. 매일 저녁이면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듯이 잠을 청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돌아가는 일상의 열정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합니다. 오늘은 이 고을에서 내일은 저 고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생활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 선포의 장소와 흡사합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종교적 열정, 사회적 열정, 사도적 열정, 가정 성화의 열정의 열기 속에서 전전긍긍합니다. 능력이 모자라고 힘이 부칩니다. 그대로 가다가는 곧 스러질 것만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휘청거리며 하루의 열정이 가시고 저녁에 스러지듯이 잠들 때에 우리는 그 모든 일들이 오늘의 복음 때문이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음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오늘이라는 이 장소에 파견되신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오늘이라는 이 장소에 파견되어 시몬의 장모님처럼 거룩한 열정을 다했노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