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밭의 가라지 비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오늘 가라지 비유 설명은 밀알 비유에 이어서 두 번째로 소개된 비유인데 첫째 밀알의 비유는 뿌려진 씨는 같은데 밭이 제각각 달라서 열매를 맺기도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기도 했던 것을 상기해 본다면 가라지의 비유는 밀알의 비유에 대비되는 비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가라지는 그리스어 성경에 지자니온ζιζάνιον으로 표기되어있는데 지자니온은 독보리darnel다넬을 의미합니다. 또는 라이그라스ryegrass로 불리기도 합니다. 독보리는 보리밭이나 밀밭에서 자라는 벼과의 일년초를 말하는데 이 씨앗은 마취약의 원료로 쓰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가라지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비슷함이 아닐까 합니다. 밀과 가라지는 서로 비슷해서 알곡이 달리기 전까지는 분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추수 전까지 둘 다 같이 자라도록 내버려 둡니다. 왜냐하면 알곡을 위해서입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이 뽑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둘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자라는 속도입니다. 가라지가 더 빨리 자랍니다. 성장이 빠르다는 것이죠. 그만큼 뿌리가 튼튼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라지를 뽑는다면 분명히 밀알의 뿌리도 잘려나가거나 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얽히고 설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에 추수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밭에 뿌려져야 하는데 그런 좋은 밭에는 원수가 와서 가라지도 뿌린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알곡도 자라고 나쁜 가라지도 자라는 이토록 좋은 땅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좋은 밭은 세상이라고 하셨으니까 좋은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토양이 좋다는 말은 흙이 기름지다는 말입니다. 기름진 토양 속에는 온갖 생물이 함께 살아갑니다. 모두에게 양분을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에서 그 기름진 토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하여 모세를 통해서 이렇게 전해줍니다. “모세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 사십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 즉 계약의 말씀 하느님의 말씀을 돌판에 기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이 없는 돌판에 계약의 말씀을, 아무런 양분이 없는 돌판에 하느님의 말씀을 새겨넣었더니 기름진 땅이 되고 좋은 토양이 된 것을 일컬어서 십계명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계명은 기름진 우리 마음을 의미하고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자녀들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토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가라지도 이 좋은 밭에 뿌려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라지도 십계명 위에서 뿌리내리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땅, 즉 땅을 좋게 만들어주는 토양에 해당되는 하느님의 열마디 말씀인 십계명은 어떤 계명입니까??? 어떤 계명이길래 밀알이든 가라지든 많은 열매를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된다는 것일까요??? 아시다시피 십계명의 열가지 계명은 의무 계명과 금지 계명으로 되어있습니다. 의무계명은 해야만 하는 것으로 제3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와 제4계명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 계명인데 하면 안된다, 해서는 안된다, 하지마라는 계명들입니다. 이 금지계명들을 보면 “나 외에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된다”, “내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마라”는 하느님에 관한 계명이고, 그리고 나머지 여섯가지는 탐내지 마라는 것인데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언/ 이웃아내/ 이웃재산을 탐내지마라”입니다. 즉 나머지 여섯가지는 인간의 탐욕에 관한 계명입니다. 하지만 십계명이라는 것은 원래 이보다 더 단순한 계명이었습니다. 이미 모세이전에 창세기2장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의무계명과 금지 계명을 주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다음과 같은 계명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십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자 그러면 창세기2장의 계명은 모세의 계명에 비추어보면 어떻습니까??? 무엇을 하라고 하고 무엇을 금지시켰습니까??? 창세기의 의무규정은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리고 금지규정은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런데 히브리어본 성경에는 명령형이 아니라 진행형으로 되어있습니다. “따 먹으면 안된다”가 아니라 “따 먹지 못할 것이다”로 되어있습니다. 탈출기 모세의 십계명에도 마찬가지 진행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죽으려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죽으려면 따먹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선과 악을 알게하는 선악과 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탐할 수 있게된다는 것입니다. 즉 불가능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모세이전에 창세기2장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의무계명과 금지 계명을 주었다고 했는데 하지마라는 금지규정은 어떻게 됩니까??? 없지요. 죽는 사람에게는 금지규정이 없습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금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하지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너는 어떻게 어떻게 할 것이다’라는 진행형 의무계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악한 자가 와서 좋은 밭에 가라지도 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밀알과 함께 자라도록 배려해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말하는 좋은 땅은 온유하고 겸손한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사랑의 계명이라는 것을 명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라지는 다름 아닌 원수가 우리 마음에 뿌린 우리의 고집과 시기심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고집과 시기심은 우리 자신과 얼키고 설켜 있어서 뿌리뽑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추수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라지를 거두어들이듯이 우리의 마음에 뿌리내린 고집과 시기심을 모두 사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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