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렇게 무모하고 무책임하고 무익한 말씀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양과 이리를 떠올릴 때에 이리가 양에게 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리가 양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양을 이리에게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양과 이리를 떠올릴 때에 양의 탈을 쓴 이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의하면 그 반대로 이리의 탈을 쓴 양의 모습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양이 이리의 탈을 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이리의 탈을 쓰는 양이 되는 것일까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예방해서 해가 없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통상적으로 해가 없다는 것은 공격을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입니다. 즉 이리에게 물려도 죽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이리가 뭐하러 양을 물겠습니까??? 아무리 물어도 죽지 않는데 왜 물겠습니까??? 그러면 "예방해서 해가 없도록 하라"는 말씀을 우리 바오로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바오로적으로 예방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해가 없을까요???? 청빈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빈한 양이 되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창립자 복자 알베리오네의 청빈 사상안에는 다섯가지 청빈이 있습니다. 창립자께서는 바오로인의 네바퀴인 기도 공부 사도직 청빈을 이야기하시면서 마지막단계인 청빈은 포기, 생산, 보존, 대비(예방), 건설이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빈은 사회와 공동체의 공동생활을 통하여 성소의 균형을 이루게 해주며, 절약과 정당한 상품가격, 회계, 수입, 지출의 경영 관리를 균형있게 해준다. 그리고 청빈은 건강과 의식주생활의 올바른 절제를 일러주고, 정화, 예절, 질서를 배려하며 선한 방법을 증가시켜줌으로써 성화의 재질을 키워준다.” (CISP 10) 따라서 청빈이야말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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