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부활제5주간 금요일 요한15,12-17 계명, 사랑의 신비, 마중물 메시아사상 (20230512 바딸)

jasunthoma 2023. 5. 12. 04:3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계명과 명령에 관하여 말씀하시는데요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하고 먼저 계명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계명ντολή엔똘레는 칙령 지휘 조례 법령 결정 명령 지시 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하고 말씀하실 때에 명령은 명령ντέλλω엔뗄로의 직설법 1인칭 단수형으로 엔뗄로마이는 명령하다 지시하다 명하다 시키다 매기다 등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그냥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라 명령으로 사랑하여라 하신 말씀에 잠시 머물러 보는 것도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명령 ְצַו֙싸디바흐이라는 말을 성경에서 처음 사용한 곳은 창세기 216절인데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어도 된다’”라고 말씀하실 때에 처음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즉 하느님이 사람에게 내리신 첫 명령은 모든 열매를 따먹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여라는 명령이죠. 흔히 생각하기에 명령이라함은 어떤 특수한 사명으로써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꼭 해야한다는 강요의 의미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군대에서 돌격앞으로 라는 명령을 받을 때에는 죽음이 전제된 행동을 강요하는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명령이라는 말은 듣고 수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주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강요와는 반대로 창세기 하느님의 첫 명령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명령은 닮아있습니다. 어떻게 닮았습니까??? 죽음이 전제된 명령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라는 강요로서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적어도 창세기에서 만큼은요. 누구 생명을 살리라는 명령입니까??? 지신의 생명을 살리라는 명령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신앙에 맞춰서 자신을 구원하라는 의미로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타인의 생명 즉 친구의 생명을 먼저 살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사람이 하느님을 일컬어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은 메시아 사상의 정점이자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상은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리는 마중물과 같은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장이 있고 직원이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누구를 사랑하게 될까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할까요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할까요, 사장이 직원을 사랑할까요 직원이 사장을 사랑할까요. 제가 아는 바로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면 했지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직원이 사장을 사랑하면 했지 사장이 직원을 사랑할 리는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법칙을 깰 수 있는 원리가 마중물 원리입니다. 즉 직원이 사장에게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냥 문득 불러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되면 그 사장은 더 이상 직위를 사용할 수 없게 되겠지요. 사장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고 직원이 아니라 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상황이 바뀌게 되겠지요 사장으로서 직원에게 명령을 하달하다가 이제는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직원으로서 사장을 사랑하고 존경하다가 아들로서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아버지이니까요. 좀 건너뛰어서 생각하자면 우리가 기도드릴 때에 주님이라고 부를 때가 있고 아버지라고 부를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들어주시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들어주시지는 않는데 마음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즉 주님이라고 부를 때에는 느낌이 꼭 사장님 하고 부르는 직원의 기도와 같습니다. 이때에는 주님이 들어주지 않아도 마음이 편합니다. 왜냐하면 직원의 임무를 다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버지, 아빠 하고 부르게 되면 그 기도는 꼭 들어주십니다. 만약에 아빠가 자녀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들은 아빠를 원수로 봅니다. 그러나 아빠는 그러는 아들을 미워할 수가 없는거죠. 이 원리가 마중물 메시아사상이자 오늘 예수님께서 결정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종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그리고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이 사랑의 신비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