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부활제3주간 목요일 요한6,44-51 빵과 사람의 아들 (230427 전주협력자//240811 행운동성당)

jasunthoma 2023. 4. 27. 04:06

오늘 복음에서 중요하게 다가오는 구절들은 생명의 빵사람의 아들입니다. 즉 빵에 관한 표징이 곧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의 온전한 빵은 곧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빵은 본래 탈렌트라는 말과 관련이 있는데 탈렌트의 의미는 재능, 능력, 천성, 소질, 그릇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 탈렌트는 둥글다는 의미인데요, 이는 또한 다른 여러 가지 모양의 뜻이 있습니다. 탈렌트는 하나의 둥근 지구와 같고, 또는 하나의 둥근 빵과 같고, 또 다른 의미로는 하나의 둥근 솓 뚜껑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탈렌트는 무게로도 나타내는데 1탈렌트=3,000세겔=33kg에 해당되는 무게입니다. 하지만 본래 1탈렌트 무게는 59Kg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59kg -> 차츰 48kg -> 35kg -> 33kg으로 줄어듬) 즉, 세월이 흐르면서 무게가 배나 줄어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탈렌트는 화폐로도 나타내는데 1탈렌트는 3,000세겔이라고 했는데 1세겔(시클로)는 예수님 시대에 통상적인 법으로 노예 한명의 목숨 값이고 그 값어치는 2데나리온 즉 일꾼의 이틀 품삯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1탈렌트 즉, 온전한 하나의 빵이라는 의미는 어떻게 됩니까??? 59kg일 때에는 5,000세겔 즉 노예 5천명 목숨 값이면서 일꾼 10,000날(27년 155일) 품삯에 해당되는 가치가 있는 것이 1탈렌트다는 의미입니다.

(48kg일 때에는 4,000세겔 즉 노예 4천명 목숨값이면서 일꾼 8,000 날 품삯이었고, 33kg일 때에는 3,000세겔 즉 노예 3천명 목숨값이면서 일꾼 6,000 날 품삯이었고, 27kg일 때에는 2,000세겔 즉 노예 2천명 목숨값이면서 일꾼 4,000 날 품삯이었습니다.

온전한 하나의 빵(1탈렌트)은 이토록 많은 사람의 생명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탈렌트를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그대로 쌓아두면 어떻게 됩니까??? 세월이 지나면서 그 값이 떨어진다고 했죠. 5천세겔-> 4천세겔-> 3천세겔. . .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죽지 않고 한 알 그대로 남아서 그 값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토록 많은 생명과 같은데 만약에 죽게 되면 얼마나 많은 열매가 맺힙니까??? 30, 60, 100, 1000, 만배. . .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밀알의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믿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첫걸음과 다름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에 다짜고짜 행실로 하느님의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믿음으로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작은 겨지씨 한 알 만한 믿음을 지닐 수 있도록 생명의 빵을 믿는 일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러한 생명을 지니고 있는 온전한 빵이며 하느님의 탈렌트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온전한 하나의 빵은 그리스어 성경에 아르토스ρτος로 되어있습니. 아마도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아람어나 히브리어로 사용하신 말씀을 그리스어 성경을 집필할 때에 아르토스라고 번역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이 말씀을 하실 그때, 통용되던 빵이라는 말들이 여럿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르토스라는 의미의 말씀으로 당신을 지칭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빵을 의미하는 그리스말로 아르토스 말고도 시-토스σĩτος, 뮈스틸-μυςτίλη, -르논πύρνον, 쁘시키-ψιχίον, -ψον, 엥끄뤼피-아스έγκρυφίας, -피톤λφιτον,  뜨록사-르떼스Τρωξάρτης,  아르토-폴리스ἀρτόπωλις, 아르토파-고스ἀρτοφάγος 등이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을 아르토스, 생명의 빵 즉 살아있는 빵ρτος της ζωης 아르토스 떼스 조이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르토스라는 단어의 어원은 불명확하지만 아르토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마련하고 준비하다"의 뜻을 지닌 "아르튀오"가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아르튀오는 "기도하다/간절히 바라다"는 "아라오"와 "경작하고 뿌리고 심고 낳다"는 "아로오"의 어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었던 빵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빵이었습니까??? “만나מֹו무흐였지요. 히브리어로 만나는 무흐로 소리나는데 화가나서 소리를 지르다, 울다, 노하다 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만나로 만든 빵, 하늘에서 내린 하얀 가루가 뭔지 몰라서 서로 물어보다가 만나로 부르게 된 겁니다. 모세는 "이 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준비하시고 마련하신 양식이 만나입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으로 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실증이 나도록 먹었던 빵이 만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느님이 마련하신 양식을 먹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울며, 절규하듯이 무흐라고 외쳤을 때를 생각한다면 또한 어떤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을까요???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엘리?엘리?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은 반대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배고파서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릴 때에 했던 호소 !. . . 우리를 굶겨 죽이려고 이 광야로 끓고 왔소?”와 대조적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야 말로 예수님께서 그러한 그들에게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주기 위해서 절규하는 한알의 밀알의 신비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이 생명의 빵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분명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빵에 이어 두 번째 사람의 아들입니다. 사람의 아들을 믿는 것에 관해서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데 니코데모와의 이야기에서 구리뱀에 관한 해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여기서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라는 말씀은 사람의 아들의 승천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사람의 아들이 하늘로 올라간 이가 아니라 내려온 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즉 사람의 아들이 내려오신 이유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려는 하느님의 뜻이었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지혜서 916-17절에 이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 . 즉 다시 말하자면 결국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내려오신 이가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이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내려오신 이가 하늘로 영광스럽게 올라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315절에 나오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즉 만약에 우리가 하늘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럽게 이 세상에 내려왔다손 치더라도 다시 하늘로 올라갈 때에는 영광스럽게 올라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라는 이 말씀은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하늘에서 내려왔지만 영광스럽게 올라갈 수 없었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곧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 . 무슨 말씀입니까??? 왜 들어 올려져야 합니까???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내려오신 분이 왜 들어 올려져야 합니까???? 여기서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말은 누구로부터 의탁된다는 말이죠.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자력으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그리된다는 의미죠. 왜 그렇게 된다는 말일까요???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잃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상실하고 무엇을 잃어버린 겁니까???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영광스러움을 상실하고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아들에게 주어졌던 모습을 상실해서 아무런 능력도 권능도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아들도 들어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죠. 그러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과 같이 당신도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들어올린 뱀은 어떤 뱀이었습니까??? 구리뱀이었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물린 뱀은 어떤 뱀이었습니까??? 민수기 21장에서 모세의 구리뱀 이야기를 보면 불뱀이라고 했는데 독사 또는 코브라와 비슷한 뱀이었겠죠??? 이사야서 306절에 보면 이 불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겝의 들짐승들에 대한 신탁. 위험과 고난의 땅, 암사자와 으르렁대는 수사자와 독사와 날아다니는 불 뱀의 땅을 거쳐. . .” 날아다니는 불뱀. 여기서 불뱀을 날아다닌다고 했습니다. 날아다니는 뱀을 본 적이 있습니까??? 뱀이 날아다니려면 뭐가 있어야 합니까??? 날개가 있어야겠죠. 날개가 달린 뱀을 세라핌śārāf שְּׂרָפִ֔ים이라 불렀습니다. 동양에서는 용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날아다니는 뱀인 불뱀이 물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죽게 되었을 때에 모세가 기둥에 매달아 놓은 구리뱀을 보면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원래 불뱀은 하늘의 세라핌인데, 세라핌에 관해서는 이사야서 62-6에 나오는 사랍이 이에 해당하는 천사입니다. 이 사랍은 날개가 6개 달려서 날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사랍 즉 세라핌이 어쩌다가 얼굴을 가리는 날개를 잃고 발을 가리는 날개를 잃고 날아다니는 불뱀이 된 것입니까??? 불뱀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는 독사가 되었습니까??? 이들은 원래 백성을 무는 천사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는 천사들입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라고 찬미하는 천사의 무리들이 사랍, 세라핌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었을 때에는 이들 또한 천사의 직위를 상실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천사가 세라핌의 직위를 내려놓고 구리뱀 형상으로 죄의 모습으로 기둥에 매달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모든 영광을 내려놓고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올려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표징은 다름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표징이되어 빵도 되시고 사람의 아들도 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그 표징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 표징과 사람의 아들의 표징은 모두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기 위한 절규입니다. 이 말씀이 사람의 아들이자 온전한 빵임을 믿고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에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