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하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말을 듣게되자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떠나갑니다. 그들은 오천명을 먹이실 때만 해도 모두가 기쁨으로 충만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빵의 기적 이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예수님은 더이상 빵의 기적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물론 다른 복음에서는 사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통해서 한 번 더 배불리시지만 요한복음에서 만큼은 그러한 기적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시는 듯, 말씀만 하시지 빵을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마르타가 음식을 장만할 때에도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이야기만 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군중은 믿음도 좋지만 제때에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앞섭니다. 알고보면 그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믿었던 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배를 채우고 나면 뭐든지 시시해 지기 마련인가봅니다. 다른 것보다 말씀은 더 보잘것 없어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이 생명이라고 가르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배고플때에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배부른 다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말씀을 믿기보다 빵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결국 처음부터 예수님께 불림을 받은 열 두 명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곁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불리움을 받았기때문입니다. 내가 저분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예수님께 가까이 온 사람들은 떠날 때에도 알아서 잘들 떠나갑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시어 예수님을 따르게 된 사람들은 다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었기때문에 떠나고 싶어도 어떻게 떠나야 할지를 몰라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떠나라 하기 전까지는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하지만 기적에 혹해서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은 말을 잘 안 듣습니다. 빵이 말씀이라해도 안듣고 말씀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라고 해도 거부 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며 경청을 거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육적인 기적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처음으로 시작 할 때에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람이 있고 꼭 누가 하자고 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알아서 척척 일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또 그런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르심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군중들로부터 보시고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전해줍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먹고 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늘, 항상 좀 더 좋은 것을, 잘 먹을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집니다. 어쩌면 제가 수도원에 들어와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이렇게 꿈틀 거리는 것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첫 마음이야 좀 더 거룩하고 열성에 가득차서 십자가를 내세웠겠지만 시간이 갈 수록 잘 먹고 잘 마시기 위해 혈안 되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약한 내 모습에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예수님은 영에 관해서 말씀하시는데 나는 육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오늘 무슨 요일이지??? 오늘 반찬은 뭐가 나올까? 하며 기도시간을 허투로 낭비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정화하고 비워내기 보다 기대를 하면서 욕심을 채우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생명을 주는 말씀은 우리의 정화와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하고 요한15,3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명을 누린다는 것은 계속해서 정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정화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새 몸도 마음도 영혼도 병들어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의 힘으로 우리의 수고로움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생명의 말씀의 힘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정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분리하고 치우고 정돈하고 비워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세상이 아무리 좋은 먹을 거리와 입을 거리, 그리고 누릴 거리가 즐비하다 하더라도 어느새 그것들은 먹기에 거북한, 입기에 거북한, 그리고 쓰기 거북한 자기 욕심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화되지 않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 병들어가는 요즘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이 더욱 목마른 세상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생명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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