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과 그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이와 관련하여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잔과 우리의 잔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식당청소를 하다가 수련자 형제님이 제 성반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특징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성반에 특징이 있겠느냐며 별다른 특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끗하고 흠집이 없고 손때가 덜 뭍은 것이 제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품받은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성작과 성반은 새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뒤에 서품받은 수사님이 있긴 하지만 그 수사님은 누가 쓰던 것을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제 것이 가장 새 것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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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반이야기가 끝나자 이번에는 성작의 특징들에 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그 성작이 누구것인지를 알아보려면 그 수사님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고 애기해 주었습니다.
성작 주인의 모습에 따라서 성작도 모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리푸조, 실바노, 이냐시오, 안토니오, 모세, 베드로, 안젤로, 니콜라오, 보니파시오, 요셉, 마조리노, 백수사님, 양수사님. . .
이중에서 가장 주인을 닮은 성작은 니콜라오 수사님것이라고 귀뜸을 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메일 주소가 쉐도우 닉 으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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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의 잔은 우리 각자의 모습을 닮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잔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어둡고, 껌컴하고, 무겁고, 거칠고, 좁고, 물르고, 길쭉하고, 날카롭고, 뾰족하고, 투박하게 생겼을까???
아니면 밝고, 가볍고, 매끈하고, 넓고, 단단하고, 안정되고, 부드럽고, 둥그렇고, 세련되게 생겼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예수님의 잔은 이러한 우리의 잔을 모두 합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그런 모습이라며 예수님의 잔은. . . 구유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구유는 이런 잔들의 모든 특징과 모양을 모두 갖추었다고 생각하기 때문니다.
그리고 구유는 잔처럼 들고 마실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술이 담긴 구유를 들고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출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를 들어옮길 수 없다면 내가 그에게 다가 가는 것입니다.
술독을 들고 마실 수가 없다면 내가 술독에 빠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떠서 마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잔을 두가지 방법으로 마시게 됩니다.
떠서 마시기도 하고 담가서 마시기도 합니다.
판관기에보면 판관 기드온이 미디안을 치려고 할 때에 정예부대를 뽑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두렵거나 무서워 떠는 병사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까 3만2천명 중에서 2만2천명이 돌아가고 만명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만명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물가로 데려가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물에 입을 담그고 마시는 사람이 7백명이었고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는 사람이 3백명이었습니다.
기드온은 물을 떠서 마시는 사람 3백명을 정예부대로 뽑아 미디안을 쳤습니다.
여기서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는자는 (물을핧는 자로서) - 경계를 늦추지 않는 양치기개의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물에 담믈을 들이키는 자는 (물을흡입하는 자로서) - 염소나 양이 물을 마시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자는 앞서가지만 양떼가 뒤처지지 않게 뒤에서 양떼를 몰아주는 것은 양치기 개의 역할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두가지 모습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매일 차려지는 천상의 잔을 두가지 모습으로 마시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양들의 모습으로, 혹은 양치기 개의 모습으로 . . .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구유의 모습을 취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우리자신을 내려 놓고 누구든지 와서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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