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티는 뭐고 들보는 뭘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티라는 것은 재물 중에 가장 작은 재물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들보는 가장 큰재물이 될 것입니다.
실지로 집을 지을 때에 들보가 가장 크고 비싼 재료로 쓰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티와 들보는 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내 것이 더 소중하고 가치있어 보이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내눈에 들어있으면 크고 귀한 재물이 되지만
남의 눈에 들어있으면 작고 보잘것없는 티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눈에 들어가면 들보요 남의 눈에 들어가면 티가 됩니다.
사실은 티나 들보나 같은 것입니다.
어느 사람의 눈에 들어가냐에 따라 티가 되기도 하고 들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되질 하는 되가 크고 관대하고 너그러우면 남의 허물이 들보만 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되질하는 되가 작고 고집스럽고 시기심이 가득차있으면 아무리 남의 허물이 티끌만하게 작다 하더라도 이를 참지 못하고 눈에 티를 빼내겠다고 달라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눈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의 잘못은 작아도 잘 보이는 반면에 내 잘못은 아무리 커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련기때에 인근 본당 주임 신부님들을 초대해 놓고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수련장 수사님으로부터 지원자 형제들과 노래를 한 곡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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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이라는 것은 자기 우월함을 드러내려는데서 발생합니다.
우상은 허상과도 같은 특성을 지니고있습니다.
그런데 눈에보이고 손에 잡힌다고 모두가 실체가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자신이 바로 허상이고 허물인데 그눈에 보이고 그 손에 잡히는 것이 참일 수없고 실체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표상이 재물이나 권위라면 그보다 더 확실한 우상은 없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우쭐거림은 많은 경우 재물의 힘, 또는 자기 권위에서 나오기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우월함이 고통스러움과 챙피함을 멀리하고 있다면 그것은 실체가없는 허상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잔 속을 깨끗하게 닦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판하고 단죄하는 것은 하지말고
용서하고 베풀어 주는 것은 내가 먼저 시작할 때에 우리의 잔 속은 깨끗해 질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거나 판단하는 일은 미루는 반면 형제의 작은 허물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은 서둘러 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오늘 하루 내 눈을 가리는 우상은 무엇인지를 잘 살펴 보고 그 우상을 잘 내려 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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