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11주간 목요일 마태6,7-15 일용할 기도(성바)

jasunthoma 2015. 6. 19. 08:22

한밤에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어제 춘천에서 기우제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비를 기다리다 못한 마을 주민들은 시장을 비롯하여 인근 사찰 주지스님을 모셔다가 비를 내려주십사고 하늘을 향해 정성을 다해 제물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기우제를 올린 춘천지역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기우제와 관련하여 짧은 예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는 것도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을에 가뭄이 극심하여 모두가 기우제를 지내려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에 올라 정성을 다해 제단을 쌓고 가져온 제물을 한상차려서 하늘을 우러러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고 곧이어 우르릉 쾅!! 쾅!!! 하면서 비가 따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을 이장을 비롯하여 어르신들은 비를 피하느라 우왕좌왕하며 갈팡질팡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꼬마 아이가 우산을 척!!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눈이 휘둥글해 지며 저마다 한마디씩 물었습니다.

"애야 너는 어찌하여 우산을 챙겨왔느냐?"

이에 꼬마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어찌 우산을 챙기지 않았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하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무엇을 청하기 전에 이미 그것을 받았다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양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고 그것을 받을 수 있도록 매일 합당한 기도를 드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고 하시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기도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 질문은 "깨어나는 기도"의 공동저자이신 우리 이냐시오 수사님께 여쭤봐야하는데 오늘 지방출장 가셔서 아쉽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비춰본다면 기도란 다름아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의 핵심이 되는 내용은 바로

주님의 기도의 한 가운데에 있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청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일용할 양식은 얼마만큼 구하는 것이 일용할까요?

'일용할 양식'의 합당한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요?

누구는 조금만 먹어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이는 많이 먹어야 만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애매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불신과 오해 그리고 모든 잘못과 유혹은 이 일용할 양식의 이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갈아 먹고도 만족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사렙타의 과부는 밀가루 한 줌을 가지고도 나눠먹고 만족하여 배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복음적으로 합당하게 두루두루 공평하게 먹어서 만족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인간이 하느님께 합당하게 청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은 '성체'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 이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양식은 없습니다.

그 외에 것은 덤으로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말하면 비매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축복으로 이루어진 비매품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렇게 덤으로 받은 축복은 누구에게 나눠줄 수 없도록 나와 한 몸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이미 우리가 청하는 것을 다 받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비매품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매품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는 덤으로 받은 하느님의 축복에 가격표를 붙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것을 내것인양 소유하려는데서 우리의 모든 허물이 발생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이 하늘에 계신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며, 그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 분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삶이 일용할 기도로 바쳐질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