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부활제4주간 화요일 요한10,22-30 변치않는 사랑(성바)

jasunthoma 2015. 5. 3. 05:05

소금인형이 바다로 간 이유는 뭘까요?

어느 시인의 말대로 라면 ->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또 다른 시인의 말대로 라면 -> 바다를 휘젓기 위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기에 소금인형이 바다로 간 이유는 -> 바다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씀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삼위일체 교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얼마만큼 하느님을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손수 만드신 사람을 보시고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이점이 바로 하느님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수 있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렇게나 만들어놓고 이게 내 모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모상이 아니라 모순덩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갖 피조물들은 아무렇게나 만들었을지 몰라도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온전히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자신과 똑 같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하나이신 하느님 당신이 직접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자신의 모습으로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아들은 아버지를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내려오신 아들이 아버지 사랑을 증거하는 최고의 고백은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습뿐만 아니라 영혼과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하신 그 말씀대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침묵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결국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말씀은 고백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아들이 고백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이미 그렇게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진실로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말씀에서 사랑의 극치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기득권과 권력의 합의가 아니라 희생과 봉사의 받아들임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그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셨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종으로 살아가려는 것이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죄가 우리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임프수사님 간병가서

임프수사님의 혈액형이 A형 -> AB형으로 바뀌었다며 혈소판 주사를 주는데 AB형을 가져와서 링커에 매달았습니다.

이식을 했기때문에 혈액형이 서서히 바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사실을 처음 알았다면서 간호사에게 한가지 궁금하다며 물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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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 되어 우리도 온전히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머무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