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사순제5주간 화요일 요한8,21-30 저주를 축복으로(스승)

jasunthoma 2015. 3. 24. 05:5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만을 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만을 말하시는데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축복을 해주시지 않고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며 저주를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저주는 오히려 합당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저주가 어찌하여 하늘에 계신 분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며 또 그러한 저주가 어찌하여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에 계신 그분 마음에 드는 합당한 일일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렸다가 많은 사람이 불뱀에게 물려 죽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그 뱀을 치워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달라고 모세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불뱀을 치워주시지는 않고 오히려 구리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놓아라고 모세에게 이르십니다.

그들이 범한 죄를 깨끗이 없애주시지 않고 그들의 죄를 오히려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은 모세가 만들어 기둥에 달아놓은 구리뱀을 처다보면 살아났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분은 하느님이시지 결코 예언자의 몫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여 불평을 축복으로 돌려서도 안되고

나와 먼 사람이라고 하여 축복받은 사람을 저주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축복해달라고 한다고 무턱대고 축복을 해주어서도 안되고 사람들이 저 사람들을 저주해달란다고 생각없이 저주를 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당신이 주님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저주를 바라는 사람들을 축복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합니다.

 

쿠오바디스는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입니다. 끝 부분에는 제목을 암시하는 다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박해를 피해 베드로는 로마를 탈출하지요. 자신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권유 때문에 억지로 달아납니다. 로마를 벗어나는 도로 위에서 그는 스승님을 만납니다. 베드로는 놀라며 묻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쿠오바디스 도미네) 예수님께서는 짧게 답하십니다. “네가 /내 백성을/나를 버리기에 한 번 더 죽으러 간다.” 그 말에 베드로는 깨달음을 얻고 로마로 돌아옵니다.

당신이 주님임을 믿는 사람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스럽게 저주를 하기도 하고 저주하듯이 축복을 하기도합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죄가 축복이 되는지를 잘 묵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