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연중제5주간 월요일 마르6,53-56 구원의 대상(딸)

jasunthoma 2015. 2. 9. 04:0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들이 예수님께 직접 손을 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 본문에서 마리아막달레나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던 사람들 중에 마리아도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리아막달레나", 제니퍼 리스틴/ 이창훈, 성바오로 2024, 170쪽 참조/ 어쩌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니-말라3,20" 라는 예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것을 보고 그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이해했을지 모른다/ 여기서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에서 히브리어 "날개"는 히브리어로 "모서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옷자락에 달린 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머물러 보는 것도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같습니다.

더불어서 왜 그들은 예수님의 손을 잡거나 몸에 닿거나 옷자락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옷자락에 달린 술에 손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신명기 22장 12절에 보면 옷자락에 다는 술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너희는 몸에 두를 겉옷자락 네 귀퉁이에 술을 만들어 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옷에 달린 술이라는 것은 옷의 가장 끝자락에 해당하면서 겉옷을 두른 사람의 네 귀퉁이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말하자면 네 귀퉁이에 달려있기 때문에 병자들이 사방에서 예수님께 몰려들어 손을 내밀었을 때에 치유의 손길이 닿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자중 누구도 치유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겉옷의 가장 끝자락 사방에 달린 술에 손을 대기만 해도 그렇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창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피조물의 창조에 관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에 네째날까지는 세상의 바깥을 만들어 채우시고 다섯째날과 여섯째날에는 온갖 생물들을 창조하시어 세상의 안을 채우십니다.

네째날까지는 우리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빛/물/땅/해.달.별을 만드셨습니다.

즉 세상의 겉모습인 대상을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대상은 겉모습(네째날까지만든사물,생물,인물)을 넘어서 자기 자신의 감정과 영혼을 제외한 모든피조물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하자면 피조물의 특히 인간의 대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왜냐면 "대상없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기독교의본질 65쪽) ->>

따라서 안에 있는 피조물은 바깥에 있는 대상을 통해서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자기 자신을 주님의 도구로 써주시기를 노래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대상으까지 소급시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병자들과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깃을 통해서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대상이 서로에게 구원의 도구가 되고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 안에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