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나해 대림제2주간 화요일 마태18,12-14 기쁜 양(성바)

jasunthoma 2014. 12. 9. 05:42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 한마리를 찾아 나선 목자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은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지 않는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양이 길을 잃을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왜 그 양이 길을 잃도록 그냥 내버려두셨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길을 잃지 않도록 보호하고 이끌어 주면 될 것을 잃어버린 다음에 찾아나서면 소잃고 외양간고치는 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든지 길을 잃지 않든지는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주관하는 자유라는 것입니다.

풀뜯을 때 풀뜯고 길을 걸을 때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런데 길 잃은 양은 남들과 상관없이 풀뜯을 때 길을 걷고 길을 걸을 때에 풀을 뜯는 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유를 누리는 것을 잘못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결국 그 댓가로 길을 잃고 생명이 위태로워지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길을 잃은 것은 양을 찾으러 나서는 목자의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길잃은 양의 습관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잃었던 양 한 마리를 되찾게 될 때에 하늘나라에서는 더욱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잃어버린 양 한마리는 동료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광야로 내몰린 한마리의 양과도 같았습니다.

- 그 내몰린 양은 광야 어딘가를 방황하다가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창세기 22장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흔아홉살에 이사악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에 그의 나이는 백살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태어난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쳐라고 하십니다.

만약 그렇게하여 기적적으로 낳은 이사악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다시 예전처럼 아흔 아홉살 때의 방황하는 처지,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모든 것을 포기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위에 올려놓고 손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에,

천사의 말을 듣고 멈추어 아브라함이 눈을 돌려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대신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 숫양은 처음부터 길을 잃고 광야로 내 몰린 양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악대신 번제물로 바쳐질 양이 아니었습니다.

백마리의 양과 함께 풀을 뜯을 때에 풀을 뜯고 길을 걸을 때에 길을 걷던 착한 양 한마리였습니다.

 

언젠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 중에서 교회는 야전병원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크고 튼튼한 벽돌로 쌓은 종합병원이 아니고 부상당한 지역, 상처받은 현장에 임시로 세워진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천막을 치고 세워진 교회를 상상해 보십시오.

잃은 양 한마리를 찾고서 기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깟 양 한마리 찾은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곳은 이미 야전병원이 아닐 것입니다.

그 길 잃은 양 한마리그 얼마나 중요한지는 천막을 치고있는 목자와 나머지 양떼는 알고 있습니다.

그 한마리로 인해서 아흔아홉마리가 번성할 수도 있고 모두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 "몽테뉴와 함께 춤을" 이은지 감독의 독립영화를 봤습니다.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 떠나는 한 은퇴 번역가의 여행을 다루는 휴먼다큐영화였습니다.

번역가로서 자신의 울타리를 이탈하지않고 은퇴하도록 충실하게 살았다고 회고합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친정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신적 방황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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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출 때 춤추고, 잠잘 때 잠잔다.”

“최고로 아름다운 인생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삶의 순간순간에 충실하자는 몽테뉴(수상록)

 

하늘나라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이 먼저 다다랐다고해서 먼저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양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할때까지 기다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연약하고 길잃은어린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내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찾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