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독방을 쓰니까 그런 경향이 덜합니다만은
제가 지청원기 때에는 한방에서 네명이 함께 지낸 적이 있습니다.
뭐 그보다 더 예전에는 더 많은 형제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만
수도원 맨 꼭대기에 위치한 지청원소는 볓이 잘들어서 먼지도 눈에 잘 보입니다.
한방을 여러명이 쓰다보면 꼭 청소 하는 형제만 방청소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청소하던 형제마저 마음이 틀어져 버리면 기이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철침대 밑에 먼지가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은 먼지가 굴러다닙니다.
방문을 열거나 닫을 때에 실타래처럼 솜사탕처럼 서로 감겨서 바닥을 굴러다닙니다.
생각해 보면 그 먼지다발은 우리의 소중한 머리결에서 나왔고 이불이며 옷에서 일어난 보풀이었습니다.
각자의 장소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에는 애지중지 손질하고 드라이하며 소중히 여겨졌는데
붙어있던 곳에서 떨어져 나오자 마자 눈밖에 나고 발길에 채이는 꼴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말못하는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시는 장면을 보고 군중의 반응을 두 부류(세부류)로 전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하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놀라워하는 군중들은 14절에 있는데 오늘 복음은 15절부터 시작하므로 빠집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번째 사람들의 반응인 "저자는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한 말에 대하여 비유로 그들의 생각을 꾸짖으십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하지만 군중의 눈에는 각자의 믿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힘이 하늘에서 오는 것으로 보이고
또 언떤 사람은 인간에게서 오는 것으로 보이고
또 어떤 사람은 베엘제불에게서 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해보면 팔은 결코 바깥으로 굽을 수 없으며 가제는 게편이니 결국 베엘제불이 사탄을 미워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그와 반대되는 하느님의 힘이 아니고서는 내 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마귀보다 더 힘이 센 또 다른 마귀의 도움을 청하기위해 불러들였다가 그 사람은 처음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가 들린 사람에게서 악귀를 쫓을 때 하느님의 힘으로 몰아내지 않고 그 마귀와 유사한 힘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좋은게 좋다고 마귀를 내 보낼 때에도 마귀 두목이 와서 그를 조용히 데려가기를 바라는 경향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반대되는 세력이 모여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혹시 악령을 내 쫓으려다가 잘못하여 이사람의 좋은 모습까지 훼손 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일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그쳐서 악령을 내 쫓으려다가 천사까지 내쫓게 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일로 체념할 필요가 없다며 못마땅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사탄의 무리와 이세상에 왕국을 세운 나라는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져버리지만
하늘에 거처할 집이 있는 사람들이 이세상에 세우게 될 하늘나라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탄의 무리는 쫓겨나면 어디 갈 데가 없이 떠돌아 다니지만 천사들의 무리는 갈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무리가 갈라서면 망하게 되지만 천사들의 무리가 갈라서면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는 더 확장됩니다.
성경에 의하면 성령께서는 사도들이 갈라서는 것조차도 복음전파를 위해서라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마음이 뒤틀리는 것도 복음때문이라면 그것마저도 성령께서 그리하도록 우리를 움직이고 계시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려나가더라도 그 사람이 복음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면 하느님은 그 가지를 참 포도나무에 접붙여서 마땅한 열매를 맺어 주십니다.
같은 날, 한 아이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교육감상을 수상할 때
다른 아이는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게 잡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아이는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쌍둥이었다고 합니다.
그 집안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두 아이가 아니라 한 아이가 상도 받고 물건도 훔쳤다고 웅성거릴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둘은 다른 아이입니다.
한 뱃 속에서 태어났지만 그래서 얼굴은 닮았지만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몸에서 나왔지만 한 아이는 모범학생이 되고 또 한 아이는 범죄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장소에 머물고 있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마귀는 마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복음 후반부에 나오는 "되돌아오는 악령" 부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러면 다시 나오,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고 합니다 -
여러분들은 바깥에 나가면 주로 무슨 기도를 드리십니까?
그러면 집안에서는 주로 무슨 기도를 드리십니까?
그렇다면 혹시 성당에 가서 미사전까지 무슨 기도를 드리십니까?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닙니다.
시간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 시간에 누구를 모셔들이는지에 따라 그날의 끝이 평안 할 수도 있고 험악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달을 교회에서는 묵주의 기도 성월로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기도중에서 가장 완전한 기도는 무슨 기도인지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요?
"주님의 기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말 그대로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무슨 기도일까요???
"성모송" 그렇습니다. 성모송입니다.
성모송은 에페소 공의회(테오토코스 : 천주의 어머니) 와 관련됩니다.
성모송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꽃으로 엮어 천주의 성모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순수한 우리의 신심에서 우러나온 기도입니다.
누가 가르쳐 준 기도가 아니라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하느님 사랑을 담은 기도가 성모송입니다.
그렇다면 묵주의 기도는 무슨 기도가 됩니까?
최고의 기도!! 하느님의 기도와 인간의 기도를 종합하는 최상의 기도가 바로 묵주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인 묵주의 기도를 바치며 이웃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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