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이란 무엇인가?
백배의 열매를 맺는 봉헌의 삶이 안식인가?
한 사람의 봉헌으로 백배의 열매를 맺는 일은 무엇인가?
동기신부 동생의 자신을 내어 주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뇌사에서부터 장기를 기증하기까지의 모습을 통해서 나만의 안식이 아니라 모두의 안식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놓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안식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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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위를 오르다보면 벼랑 같은 암벽 사이에 키작은 소나무 한그루가 고개를 숙이고 매달려 있는데 그 나무 몸통을 보면 거칠었던 소나무 껍질이 반들반들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도 소나무 몸통을 잡고 오르고 내리고 해서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오늘 복음은 아주 짧은 3절에 불과하지만 이 짧은 말씀 속에는 우리 인생의 생사고락이 온전히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본디 하늘이 고향인 인류는 잠시 잠깐 세상의 포로가 되어 갖가지 시련을 겪지만 머지 않아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으로 바꿔 메게 될 것이라는 게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아닐까합니다.
고생과 무거운 짐이라고 말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고생과 어떤 짐들을 지고 계십니까?
아직 인생이 꺽어지지도 않은 제가 어르신들 앞에서 고생 고생하니까 좀 쑥스러워지는데요....
알다시피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채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지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는 가능하다는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순서가 바뀌는데에 있습니다.
먼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진 사람은 아무리 무거운 짐을 지고 큰 고통을 받아도 이를 편하고 가볍게 여길 수 있게 되는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함이란 이렇듯 다급해진 우리의 손길이 수없이 붙잡고 지나간 뒤 드러나는 반질반질한 숙연함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 집에서 나온 책 중에 "말씀과 함께 걷는 하룻길"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거기에 나온 예화가 하나 떠오르는데요. 싸움닭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닭을 훌륭한 싸움닭으로 기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싸움닭을 기르는 이에게 부탁합니다.
열흘 후 찾아가서 묻습니다.
"닭이 싸울 만 해 졌나요?"
"아직은 아닙니다. 자기 힘을 너무 믿고 있어요."
다시 열흘 뒤에 찾아가 묻자 조련사가 대답합니다.
"아직도 아닙니다. 닭만 보면 싸우려 덥벼드네요."
그리고 열흘 후에 다시 찾아가니, 싸움닭 조련사가 말합니다.
"거의 됐습니다. 이제는 함부로 싸우려 덤비지 않고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듯 합니다.
이 닭이 싸움판에 나가 '꼿꼿이' 서 있기만 해도 다른 닭들은 감히 덤비지 못하고 슬슬 물러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잠시 세상의 포로가 되어 온갖 시련과 고생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정녕 편하고 가볍다'는것을 알아차리는 데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 이사26,19
오늘 하루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출산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온갖 시련과 고통을 기꺼이 봉헌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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