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15주일 마태13,1-23 큰믿음(성바(딸))

jasunthoma 2014. 7. 13. 05:09

숭어가 뛰니까 망둑어도 뛴다

물이 들면 숭어가 뜁니다.

한마리가 뛰니까 한마리 밖에 없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 밑에는 숭어가 떼로 몰려다닙니다.

뛰는 놈을 보고 투망을 던지면 한 두마리는 잡힙니다.

때로는 해안가에서 양동이로 퍼 담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의 씨앗이 어느 곳에 떨어져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알려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연결되는 복음을 보면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 누룩/ 보물과 진주상인/ 마지막으로 그물의 비유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읽는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나오시어 호숫가에 앉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는 산에 올라 앉으시어 가르치시며 산상설교를 하셨던 것 처럼

이번에는 물 위에 배를 띄워 앉으셔서 비유로 가르치시며 수상설교를 시작하시는 모습이 연상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굳이 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밭에서 하거나 들판에서 하시지 않고 물 위에서 가르치고 계실까요?

차라리 산상설교때에 하시던대로 그 때에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도 들려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물위에서 밭의 씨앗을 뿌리는 이야기 하시고 또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본문에서도 전해주고 있는 내용이지만 모두가 또는 아무나 알아들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다 알아듣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참 가족이 된 제자들만이 이 비유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가진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자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는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씨를 뿌려서 풍성히 열매맺기 위해서 세가지를 버리라고 하십니다.

 

첫째는 불신입니다.

불신은 우리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듯이 싹을 틔어보지도 못한채 악한 자가 와서 빼앗아 가게 만듭니다.

 

둘째는 조급함입니다.

조급함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도록하여 돋아난 싹이 곧 말라버리게 만듭니다.

 

셋째는 욕심입니다.

욕심은 세상 걱정과 재물이 가시덤불과 같이 서로 얽히고 설혀서 숨쉴 틈조차 없도록 만듭니다.

 

좋은 땅이란 대단하고 특별한 땅이 아닙니다.

받아들이는 흙입니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돌을 골라내고 가시덤불을 걷어내어 고랑을 내고 두룩쳐올린 흙입니다.

이런 흙은 농부가 계속해서 일구어 놓습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기에 저렇게 높을 수 있으며

황하는 한 줄기의 세류도 마다하지 않기에 저렇게 깊을 수 있다(태사공자서)고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생명체가 살아 숨쉴 수 있는 흙과 물입니다.

물속에 있는 흙입니다.

물속에서는 모래가 숨쉴 수 있는 흙이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씨앗이 떨어지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 좋은 토양이고 그런 곳에 뿌려진 씨는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고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말씀안에 머물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의 씨앗을 받아들여서 백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