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3학년때에 설악산 종주하고 내려오는데 맷되지를 목격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와서 사목회장님과 맷되지 삶은 고기에 한잔 하면서 그 해에 맷되지 공격을 당한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맷돼지 새끼가 내려왔는데 그 새끼를 잡으려고 하다가 어미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프네우마/ 그리스도)을 모독하는 사람과 신성(사람의 아들의 신성/ 예수)을 모독하는 사람을 구분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성령 모독과 신성 모독은 다르게 본다는 말인데 과연 성령모독과 신성모독은 어떻게 다를까요?
그리고 어떻게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할 수 가 없고 신성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가 될까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두 가지 모독의 말을 했습니다.
먼저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하고
이어서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비하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예수님이 보기에 당신을 일컬어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말하는 것은 당신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베엘제불이 들렸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고 그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하는 것은 성령모독이 될까요?
생각해보면 신성을 모독하는 말은 예수님 자신에만 해당됩니다.
예수님이 베엘제불이 들렸든지 들리지 않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님만의 소관입니다.
예수님이 미쳤다. 혹은 마귀들렸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가족이나 제자들이 같이 마귀가 들거나 미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악령이 들렸소 하고 말한다고해서 예수님이 악령에 들리거나 당신은 미쳤소하고 말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미칠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성모독은 예수님 자신 이외에 다른 어떤 대상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는 말이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모독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개인적이기에 어떤 모함도 용서가 가능합니다.
즉 아직 결실인 열매가 맺어지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물이 엎질러 지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이러한 개인적인 모멸감에 뚜껑이 열리고 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자신에게 하는 어떤 모함도 다 괜찬다고 하시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할수 없다고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우리가 흔히 성령을 가족이나 가정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가족이나 가정은 개별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유대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개별존재는 보이지만 그들을 일치시키고 연결시키는 사랑의 유대는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예수님 당신 자신에게만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모독은 자신만이 아니라 이미 치유를 받아서 건강해진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래서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은 네가 건강하게 된것은 마귀의 짓이다라고 모함하는 것입니다.
이미 죄를 용서받아서 건강해 진 사람에게 그 용서는 무효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남을 심판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한머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해 연중제3주간수요일 마르4,1-20 아낌없이 받아들임(성바) (0) | 2014.01.29 |
---|---|
가해 연중제3주간화요일 마르3,31-35 이성과 신앙(성바) (0) | 2014.01.28 |
가해 연중제2주간금요일 마르3,13-19 제자와 사도 (0) | 2014.01.24 |
가해 연중제2주간목요일 마르3,7-12 더러운 영과 병고의 영 (0) | 2014.01.23 |
가해 연중제2주일 요한1,29-34 (분당성마태) (0) | 2014.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