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연중제1주간토요일 마르2,13-17 (딸// 250118 성바)

jasunthoma 2014. 1. 18. 04:3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불러 제자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는데 다른 많은 세리와 죄인도 함께 자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병든이들에게 의사가 필요하고 또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에게는 밝은 빛이 필요하듯  세리와 죄인들에게도 기쁜 소식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간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죄인이란 아픈사람, 또는 병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네명의 어부를 비롯하여, 열병을 앓았던 시몬의 장모님, 나병환자, 중풍병자, 그리고 오늘 세관에 앉아있던 세관장 레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아픈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란 그들도 아프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입을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들도 말못할 고충을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아프게 하며 또 무엇이 그들을 기쁘게 할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기쁘고 또는 아픔니까?

사도직 안하고 한 일년 쯤 푹 쉬면서 여가생활이나 좀 하면서 지내라고 하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수도자는 일년씩 쉬는 안식년이 없고 정년도 없고 은퇴는 더욱 더 없습니다.

 

또 무슨 소리를 듣게 되면 가장 기쁠까요???

설을 앞두고 아침에 까치 소리를 들으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하여 괜히 아침부터 마음을 설래면서 하루를 기쁘게 시작하기도 합니다.

반가운 손님이 오면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한다는 것 그 자체로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기쁜 소식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함께할 때에 그 기쁨은 더 커지는 것 만은 분명합니다.

 

기쁨이 이런 것이라면 반면에 세관장 레위와 그의 동료들에게 있어서 아픔이란 아무도 그들을 찾아오지 않는 것이이 아닐까???합니다.

그들은 같은 이스라엘인인데도 불구하고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크고 자랐는지, 그리고 그들의 부모형제가 누구인지 뻔이 알면서도 같은 동족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오늘 예수님 곁에 모인 그들은 자기들도 한 민족 한 동족으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동족들은 그들을 아무도 같은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형제들에게 존경받는 근엄한 수도생활에 목말라합니다.

공동체 일에 간섭을 하지 않는 근엄함입니다.

그것은 내 주위에 있는 형제들이 아파서 수시로 환자 신세가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럴땐 내가 의사가 아니니 아픈이들은 병원을 가보라며 원론적인 말을 합니다. 형제의 아픔을 나와 연결짓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결국은 내가 형제를 찾지 않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냐며 자신의 무관심함을 정당화 하고 맙니다.

 

죄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범하고 저지르는 죄인과

묵인하고 외면하는 죄인입니다.

오늘 세리들은 범하는 죄인에 들 수 있습니다.

동족들의 혈세를 걷어서 이방인 황제에게 바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 또한 범죄를 묵인한 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으니 그들의 죄가 나에게는 뭍지 않았다고 근엄한 표정으로 묵인하려고 하기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모두 '형제'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일치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를 언제나 형제애로 초대합니다.

내가 형제를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안에서 기쁘지 않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기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언제나 기뻐집니다.

그리스도가 나에게 전해준 기쁜소식을 함께 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안에서 기쁜소식을 기다리는 형제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