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대림제3주간 화요일 마태1,1-17 초월적 평화 (241217 바딸)

jasunthoma 2013. 12. 17. 08:00

다해 대림제3주간 화요일 마태1,1-7 (20241217 바딸)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마태오복음은 예수님의 족보의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14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14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14대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재로 1,1부터 예수님의 족보를 세어보면 141414대가 아니라 141413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족보에 포함된 이름이 42명이 아니라 41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명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는 상징적인 숫자를 즐겨 사용하는 마태오복음의 특징일 수도 있겠는데 마태오복음에서 소개되는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요셉까지 40명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요셉과 예수님 사이를 의도적으로 끊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17절에 보면 족보가 요셉에게서 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이는 족보에 등장하는 이방인 여인 네명을 소개하는 방법과 대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타마르/라합//밧세바를 소개할 때에는 먼저 그의 남편 이름이 나오고, 여인의 이름은 남편이름에 붙여 대를 잇는 아들 이름이 소개됩니다.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그런데 요셉 이후에 마리아에 와서는 의도적으로 요셉과 예수님을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 마탄은 야곱을 낳았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여기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라고 되어있는데 위의 이방인 여인을 소개할 때와는 전혀 다른 소개방식입니다. 룻을 소개할 때에 먼저 룻의 남편 보아즈를 주어로 소개하고 이어서 목적어 룻이 나오는데 (; 이름 세개가 나란히 나옵니다.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그런데 마리아에 와서는 주어를 생략해버리고 곧바로 목적어로 시작합니다.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라고 기록합니다. 두 이름만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첫번째 주어는 어디에 있을까요??? 즉 마태오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 오던 이스라엘의 왕족의 혈통이 요셉에게서 끝났음을 알리는 족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셉 이후에 태어난 아들은 인간적인 혈통의 계보를 뒤집는 방식으로 시작됨을 알리고자 한 것은 아닐까???합니다. 이를 다시말하자면 (예수님을 낳으신 성모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이 아닐까??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인간 혈통으로 시작되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일컬어서 사도바오로는 로마5,12+에서 새아담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곧 오실 예수님, 새 아담으로 오실 아기 예수님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자리를 정성스럽게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의 40대손인 예수님의 탄생으로 비로소 세상에 평화가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평화는 초월적 비참함의 극치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어디에서도 고통받는 영혼이 머물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2004/12/16 마태1,1-17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사람을 지어내실 때 하느님께서 복을 내려 주시며 하신 말씀이다.

인류사를 훑어보면 온통 전쟁 투성이다.

그런 중에서도 대대손손 잘도 이어져서

이제는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아졌으니

창조주의 뜻대로 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서로 빼앗으려고 아웅다웅하다가 지금까지 왔고,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는 전쟁중이니 이런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를 일이다.

한반도 역사는 볼 필요도 없이 이스라엘은 옛날은 접어두고라도

지금은 평화로운가.

주 야훼께서 정복하라 하신것이 결코 인간이 될 수 는 없다.

닷세동안 창조하신 온갖 피조물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 굴레를 벗지 못하고 피조물을 핑계삼아

인간의 생명을 약탈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모습을 보다못한 주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당신이 창조하실 때 원하셨던 인류의 모습을 재현시키고,

세상을 길, 진리, 생명 안에서 

옛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