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가해 대림제1주간 화요일 성프란치스코하비에르사제대축일 마르16,15-20 그리움(대전협력자월평동성당)

jasunthoma 2013. 12. 3. 03:53

까마귀와 두루미~~~

여호와의 증인~~~

고금도 선교사의 이야기

보름달 카스테라 이야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이르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되면 무엇을 바라게 될까요?

저는 두가지를 희망하게 됩니다.

하나는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이고

또 하나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부활하시고 분부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신 성부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는 믿음과 평화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믿음과 평화를 잘 누렸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과 평화를 누리기보다 불신과 불평에 더 목마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두차례에 걸쳐 오신 예수님의 믿음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불신과 불평에 더 친숙해 져버린 것일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바오로는 자신에게는 직무가 맡겨졌다고 말합니다.

그 직무는 무엇입니까?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고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타인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는가? 아닌가?

그리움을 주었는가? 주지 않았는가?에 따라 복음은 선포되고 전해 지는 것입니다.

 

 2004/12/02 마르16,15-20

영화 '미션'을 보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침략을 하는 사람을 볼 수있다.

침략자들은 성호를 그으면서도 원주민들에게 총을 쏘아댄다.

주인공이 처음에 원주민들에게 다가 갈때 그들은 거부했다.

동료들이 그물에 잡혀서 노예로 팔려가는 극한 상황으로 

밀림에는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모두 세례를 받고 성가를 부르고 성체를 모시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복음을 전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신앙인 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전교를 잘하는 사람들이 더러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명도 전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 모친께서는 길지않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여러명을 성당으로 인도하셨다.

그들은 모두 농사를 짓거나 시장통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바쁜생업에 하루를 보내야 겨우 먹고 살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일에 쪼들려 살아가다가 여러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겹치게되면

꼼짝도 못하고 하늘만 바라봐야 할 극한 상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럴때 성당에서, 성체앞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오히려 그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복음선포의 시작이다.

애석하게도 그들을 쪼아 붙이는 사람이 교회다니는 사람이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도 신자일 경우라도

복음은 그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방으로 나가 복음을 전해야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