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밟기를 알고 있습니다.
뿌리고 밟습니다.
이는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 중에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방법으로 경작하는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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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겨자씨를 가져다가 정원에 심었다고 했는데
공동번역에 보면 밭에다가 뿌렸다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땅에 뿌려 두기만 해도 저절로 싹이 트고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누룩을 밀가루 서말 속에 집어 넣어서 온통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둘다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비슷한 두가지 이야기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뿌리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흔히 무엇을 뿌린다고 표현할 때에는 흩어 버려서 낭비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씨앗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쓰이는데도 그것을 땅에 뿌립니다.
그것도 토실토실하고 알찬 것을 골라서 뿌립니다.
먹을 것을 땅에 뿌린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싹이 움튼 것을 밟아 버리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질금가루나 누룩은 싹이 움텄을 때 눌러서 가루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이들의 삶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확신에 차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힌 동료를 대신해서 감옥에 들어가고 재산을 빼앗기는 일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되도록이면 많은 고통을 받기를 원하고 되도록이면 많은 것을 버리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지금 내가 밭에 뿌려버리는 양식 그보다 더 좋고 또 길이 남는 생명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서 모릅니다.
우리가 뿌린 씨앗에 하느님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담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모르면서 확신에 차있습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하지만 그 씨앗은 우리의 믿음과 확신이 없이는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계속해서 이야기 하듯이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이 주신 것을 기쁘게 나누어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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