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군 복무중인 청원자 형제님이 휴가를 다녀갔니다.
며칠 머물다 떠날 때에는 서운함을 달래며 수도원 대문 앞에 서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사도직 일을 제쳐두고 최소한 지하철 역까지는 배웅하고 싶었지만 하던 일에 얽매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에 친구가 집에 놀러오면 저녁까지 먹고 어두워져서야 돌아가는데
혼자 가는 길이 위험하다고 하여 친구 짚 대문 앞까지 같이 갑니다.
그러면 그 친구도 내가 돌아갈 때에 혼자 가는 길이 무섭고 위험하다고하여 저희 집 앞까지 배웅합니다.
이렇게 몇 번이고 서로 왔다 같다 하며 어디에서 누가 먼저 양보할지 몰라 골목 중간에 있는 전봇대 앞에서 서로 헤어져서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초막절이 가까워지자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성전에 올라가십니다.
형제들과 함께 가지 않으시고 남몰래 가십니다.
그런데 가시기 전에 갈릴레아를 돌아다니십니다.
모두들 축제를 지내러 떠나 한적해진 갈릴레아를 이곳 저곳을 둘러보시며 무슨 생각에 잠기셨을까요?
이번에 갈릴레아를 떠나시면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영영 못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축제가 이미 중반을 지날 때까지 갈릴레아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올라가 드러나게 가르치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성정에 왜 왔는지 그리고 누가 보냈는지는 몰랐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뒤 이집트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를 알아본 이가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일만하다보니 사람보는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세가 아니라 일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이 볼 수있는 사람은 피라미드를 잘 쌓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분이 누구신지 무슨 일로 여기 왔고 누가 이곳으로 보내셨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몇 살인지 외모는 어떤지 어디에 살고 가족들은 누구며 경력이 있는지 없는지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니 종살이에서 자유의 몸으로 인도할 사람이 왔지만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큰소리로 말씀하시면서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유다인들은 심기가 나빠졌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잘 안다고들 생각했기에
눈 뜨고는 그 가르치는 광경을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평범하게 살아오셨고 이스라엘을 떠나본적이 없었기때문입니다.
차라리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살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나타나셨더라면 오히려 유다인은 반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오셨습니다.
이점이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인간일뿐이지 절대로 당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파견된 때가 언제인지를 묵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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