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마리아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길래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하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갈릴레아 나자렛 지방이라는 고을에 살면서 “주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응급결에 한 말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한(디알로기조διαλογίζω논쟁/토론) 다음,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나서 “주님의 종”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이 “주님의 종”의 모습을 한 이들은 어떤 이들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이들이었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있는데 꿈쟁이 요셉과 판관 기드온입니다. 먼저 창세기에 등장하는 꿈쟁이 요셉의 이야기에서 “주님의 종”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일곱 살 난 요셉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 목자였는데... 야곱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습니다. 그때문에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꿈쟁이 요셉이 꿈을 꾸고 꿈이야기(곡식단 이야기/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큰절을 한 이야기)를 형들에게 하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형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산 요셉은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빠져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겨졌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판관 기드온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하고 말자 마리아가 몹시 놀라며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은 전체적으로 판관기6장에도 등장하는 내용인데 기드온이 판관으로 부르심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 상인들 때문에 큰 곤궁에 빠지게 되자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미디안 상인들을 어떻게 좀 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예언자 한 사람을 보내주셨는데 이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위로해주기보다 그들의 잘못을 들추어내며 오히려 이스라엘을 꾸짖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미디안족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 두려고 포도확에서, 숨어서 밀 이삭을 떨어야 했습니다. 판관 기드온이 밀이삭을 떨고 있는데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화 함께 계시다’ 이 말에 기드온이 이렇게 대꾸합니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하고 말하였다. 이에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이 말에 기드온이 이렇게 대꾸합니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그러자 주님의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이 말에 기드온이 새끼 염소 한마리와 누룩없는 빵을 바쳤더니 천사가 지팡이를 대어 삼켜버렸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 주 하느님, 제가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주님의 천사를 뵈었군요!’ 그러자 주님의 천사가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기드온은 미디안족을 모조리 처부수게 됩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디안족의 전리품들 가운데 고리를 하나씩 모아서 기드온에게 주었습니다. 초승달 장식과 귀걸이와 자홍색 옷 그리고 목걸이였습니다. 기드온은 그것들로 에폿을 만들어 성읍에 모셔두었는데 그 시대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40년동안 평온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가 고백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는 말씀을 토대로 꿈쟁이 요셉과 판관 기드온 이야기에서 떠오르는 ‘종의 모습’은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곰곰이 생각할까요??? 살기위해서입니다. 생활하기 위해서입니다. 꿈쟁이 요셉이 살기위해서 끊임없이 주님의 천사와 대화를 했고 꿈을 꾸고 꿈을 해석했습니다. 판관 기드온 또한 주님의 천사와 논쟁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한 논쟁이었고 생활하기 위한 대화였습니다. 요셉이 일은 하지않고 꿈만 꾸었다면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구덩이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반대로 기드온이 용맹하게 전쟁터에서 싸우는 일만 했다면 포도확에 들어가서 밀이삭을 떨지도 않고 염소와 누룩없는 빵을 봉헌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가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마리아를 찾아갔는데 천사가 마리아에게 찾아간 것 또한 마리아가 집안에 앉아서 집안일만 한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기 때문입니다. 살기위해서 곰곰이 생각하며 꼭두 새벽부터 버스타고 이리저리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우리 어머니들과 같습니다. 창세기의 하와라는 이름은 살다/ 생활하다/ 생명을 가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생명을 가지기 위해서 마리아처럼 곰곰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는 아이를 못낳는 엘리사벳에게는 아이를 낳게 해주시고 (요셉의) 아이를 나아야만하는 약혼한 마리아에게는 (요셉의) 아이를 못낳게 하십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 세상의 순리를 따르면서 하늘의 뜻을 따랐습니다. 우리가 세상살이만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것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을 향해 뉘었고 매일 눈만 뜨면 하늘을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사람의 종”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종”으로서 영원히 세상만을 위한 아이를 못낳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육신을 취하신 하느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생명을 살고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제2주간 주님탄생예고대축일 루카1,26-38 (160403 수원협력)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예전에는 성모영보 대축일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주님탄생예고는 성모영보와 조금 다른 의미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성모영보라는 명칭에서는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성모 마리아의 역할이 중요하게 전해진다면 주님 탄생 예고에서는 마리아보다 주님 탄생을 예고하는 천사의 알림이 더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실재로 본문을 보아도 천사의 알림이 세 부분에 걸쳐 길게 서술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리아의 역할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에게 다가가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 사실을 마리아가 믿을 수 있도록 상황을 제시하고, 이어서 마리아가 기꺼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해 주는 천사의 역할도 중요하게 다가 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다는 천사의 말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 처럼 전해주었던 이가 바로 천사입니다. 마리아가 이 말을 믿지 못하고 거부라도 할까봐 그것도 아주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우리 곁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사람들을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만, 사람들 중에서는 안 될 일도 되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지칭하기는 좀 곤란하겠지만, 될 일도 안되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사람이 있고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둘 다 중요합니다. 안 되는 것을 안된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세상의 모든 배는 산에 올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안 되는 일이었는데 좀 지나다보면 그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되고 안 되고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지나 보면 어느새 그 일이 하느님의 몫인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이루어 주실 일을 섣불리 결정을 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야 하는 지를 생각하는데에 있습니다. 그 일이 잘 되고 안되고는 그 다음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식사시간에 여러가지 채소가 나왔는데 그 중에는 야콘이 있었습니다. 야콘을 처음 본 수사님이 이건 뭐야?하며 물었습니다. 옆에 있던 수사님들이 그것도 모르냐며 야콘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또 다른 수사님이 약혼하면 꼭 결혼해야지~~
태초에는 하느님이 사람을 탄생시켜야 했지만 이제는 사람이 하느님을 탄생시킬 필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하느님 성자를 잉태하는 몇가지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이천년전 갈릴레아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에서 마리아를 통하여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어져오고 있는 방법입니다. 경청과 두려움 그리고 한없이 순결 피앗(예:이루어지기를바랍니다)입니다.
DF피정이야기~~~ 기도 중의 영감// 생명이신 예수님 저의 생명을 지극히 순결한 당신 생명으로 바꾸어 주소서 DF40,3
말씀 중의 영감//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사도9,4
여러분 중에는 저보다 더 실감나게 살아오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하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실감나게 악한 환경에서 자라남. 악령들린 친척들이 몇 있었는데 저는 그 속에서 성장하며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몸에 베어있음. 누가 나에게 악령의 기운을 느끼게 하면 저는 그보다 더한 악령으로 맞서는데 익숙해 져 있음. 그래서 그런지 그런 것들이 내 안에 그리스도의 육화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형성되어있다.
순결하지 못함/ 순박하지 못함/ 순진하지 못함/ 온유하지 못함/ 온순하지 못함/ 온화하지 못함. 지극히 순결하고 한없이 순결한 당신 생명을 교만한 마음으로 비교하고 비하시켜 완고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당연시 여기는 마음으로 단단히 다져졌다
자기를 내세우고 내 뜻대로 하고자 하는 완고함.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아라 마태4,3/루카4,3. 어디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마르15,32. 하지만 게세마니에서 세차례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변화의 과정을 겪을 필요가 있다
지성으로/ 의지로/ 마음으로. 예수님께서는 결국 아버지의 마음과 하나되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하여 존재론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 DF 성자께 영광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은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그리스도화/ 육화.
그리스도 내 안에 사신다 갈라2,20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모습을 갖추실때까지 갈라4,19
~~~~넓은 마음에 관하여 이야기해주고 있음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를 하느님의 넓은 마음에로 초대하고 있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피앗Fiat). 듣는 이에게는 이 소리가 얼마나 행복한 소리인가/ 복음. 복음이 어떻게 선포되는 지를 보여줌
결국은 그리스도 안에 살면서 내 안에 모신 그리스도가 구체적으로 제 모습을 갖추시어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놓을 때까지. 우리 마음이 하느님 마음처럼 한없이 넓어지고 순결해질 필요가 있음.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이 하느님이 되기 바라시기 때문.
우리는 이렇게 해도 후회하고 저렇게 해도 후회하는 삶을 살 수도 있고 또는 이렇게 하도 행복하고 저렇게 해도 행복하고 그렇게 해도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처럼 순결하고 넓어질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역할을 오늘 천사가 했습니다. 주님 탄생 예고의 핵심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천사의 알림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하루가 될 수있도록 하고
또한 우리마음안에 하느님을 모실 수 있는 지극히 순결한 마음으로 봉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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