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연중제33주간 금요일 루카19,45-48 기도의 집(성바)

jasunthoma 2013. 11. 22. 05:24

월드컵 4강 신화때에 우리가 우승을 하지 못하고 4강에서 끝났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 때에 결승전을 앞두고 관중들이 빨간 피켓을 들고 글자를 만들었는데 그때 문구가 "꿈은 이루어진다"였습니다.

그런데 이루어진다의 이 자를 대형 매스게임 글자체로 만들다 보니 이 자의 ㅇ 이 각이 져서 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루어진다가 미루어진다로 보여서 우리의 우승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미루어졌다고 합니다.

설겆이 할 때에 마태오 수사님이 말씀해 주신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시간을 허비했구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까.

아니면 나는 참으로 잘 살아서 다시 태어나서 살아도 이렇게 살아온 대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까요?

쉽게 말하면 여러분들이 꾸었던 꿈이 이루어졌나요?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았나요.

꿈이 이루어졌으면 내가 다시 살아도 이처럼 살아가야지 하고 흐뭇해 할 수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이렇게 살진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할 것입니다.

 

저는 살면서 꿈이 두 번 바뀌었다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처음에는 넓은 땅을 경작하는 농부가 꿈이었다가

다음에는 큰 공장 운영하는사장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젠 그냥 수도자로 사는게 꿈입니다.

수도자가 수도자로 살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그보다 더 억울한 삶은 없을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가난과 순명과 정결을 봉한하는 삶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화려한 꿈보다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은 어떻게 다를까요?

같은 집이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살면  기도하는 집이되고

강도가 살면 강도의 소굴이 되는게 다르지 하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사람과 강도의 차이는 뭘까요?

 

기도하는 집에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강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무상으로 내어 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강도의 특징은 거둬들이는 일만을 따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세상 모든 만물에 꼬리표를 붙여서 가격을 매깁니다.

그래서 그것을 계산해 내느라고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귀한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 파는 이들을 내 쫓기 시작하신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사고파는 행위는 온전하게 봉헌하고자 하는 마음에 손익계산을 따지도록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져 온 예물을 있는 그대로 내어 드리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다 같이 정성스런 봉헌물인데 가겪표를 붙이는 순간 어떻게 됩니까?

본래의 모습을 변질시켜서 봉헌자로 하여금 죄책감을 조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성전에 봉헌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성전은 당신의 몸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몸을 정화하는 것은 곧 성전을 정화하는 것이됩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몸이 아니지만 예수님을 모시는 사람이라면 성전을 정화하듯이 우리 몸을 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다가올 대림을 준비하는 시기에 특히 우리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봉헌 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 예수님 안에서 동정의 시간 정결의 시간을 잘 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