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1월 26일 연중제3주일 루카1,1-4; 4,14-21 (20250126 스승)
루카1,1-4; 4,14-2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희년에 관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아서 봉독하십니다. 봉독하신 내용은 이사61,1-2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 본문 내용 중에 한 구절을 다른 구절로 바꿔서 봉독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해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이사61,1-2)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해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4,18)
그러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봉독하신 내용과 이사야서 본문 두루마리에 기록된 희년에 관한 내용 중에서 바뀐 부분은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하고”가 첨가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사야 예언서를 봉독하실 때에 두루마리에 적혀있던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주며”라는 말씀을 빼고 그 부분을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하고”로 바꿔서 봉독을 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사야서의 본문 내용을 바꿔서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한다”는 내용을 넣어서 봉독을 하셨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눈먼이들을 다시 보게한다”에서 “다시보다”라는 말은 “아나블랩시스”로 되어있는데 아나블랩시스는 “위로 올려다 본다”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복음에서 여러차례 사용되는데 특히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오로가 개종하는 장면에서 사용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아나니아에 의해 눈을 뜨고 세례를 받는 장면인데 아나니아스는 사울을 찾아가 그에게 안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사도9,18-19)
사도 바오로가 눈을 떠서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그동안에 얼마나 땅만 보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눈먼 이들을 다시보게 하고”를 굳이 강조하신 것은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셨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늘이 아니라 땅만 보고 살아가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땅에 얽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땅에서 풀려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희년이 의미는 바는 땅에 속박에서 풀려난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즉 7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쉬게하는 안식년을 선포하고,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다음 해, 50년째 되는 한해를 희년으로 선포해서 땅과 사람을 모두 풀어주게 됩니다.
그런데 올해 2025년 한 해동안 “희망의 순례를 향한” 희년이 선포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희년의 빈도는 점차 짧아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가톨릭 교회의 희년은 그레고리력에 따라 100년마다 열리는 것으로 지정되었고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1300년 희년을 처음으로 선포한 이후에 42년이 지난 1342년에 교황 클레멘스 6세에 의해 그 빈도는 50년으로 줄었습니다. 그 후 모든 세대가 최소한 한 번 희년의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1475년부터 25년마다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2015년에 자비의 특별 희년이 선포된 바 있습니다.
이렇게 희년이 100년에서 50년으로 25년으로 혹은 10년으로 짧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상의 속박이 더 강력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날 우리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