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한머금

다해 1월 8일 주님공현후 수요일 마르6,45-52 (20250108 리디아)

jasunthoma 2025. 1. 8. 04:15

오늘 복음은 주님공현후 수요일 복음으로서 마르코복음 중에서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에 관한 내용입니다. 전례력 안에서 오늘 복음을 바라볼 때에 자세히 묵상해야 할 구절은 6,45인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들을 갈라놓으시는 장면입니다. 45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둘을 갈라놓으셨을까요??? 어찌하여 제자들을 재촉해서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가라하시고 군중은 돌려보내셨을까요??? 왜 갈라놓으셨냐???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제자들이야 예수님 말을 잘 들으니까,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겠지요. 하지만 군중들은 가라 한다고 갑니까??? 군중들이 올때에 오라해서 왔습니까??? 갈 때가 되면 가고, 또 가라고 안해도 알아서 가겠죠. 그런데 당신께서는 그곳에 홀로 남으시어 군중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작별인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제자들 때문에 그렇게 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제자들이 군중의 중심에 서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한 가운데에서 제자들이 힘을 쓰고 있었던것입니다. 마치 오늘 호수 한 가운데에서 맞바람을 맞으며 노를 젓는 것 처럼요.

 

예전에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파리십자가나무 소년합창단 공연을 본적이 있습니다. 공연을 약 2시간정도 하는데 공연 후반부에 갈수록 한국 동요와 가곡들을 불러서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지막 노래가 끝나자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소년합창단은 앵콜곡으로 3곡을 더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공연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여운이 감동적으로 남아서 공연석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작별하기 싫어하는 기억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볼리비아에서 성녀 로사의 본당 주임신부님은 항상 미사가 끝나고 나면 신자들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제의를 벗지 않고 성전에서 신자들과 작별인사를 하느라고 분주하셨습니다. 아마도 일주일만에 만난 신자들과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러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군중들과 제자들을 갈라놓으셔야 했던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전례는 주님공현 이후 3일째 되는 날인데, 주님공현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서, 유다인의 임금님으로 선포했음을 기억하는 전례입니다. 그들은 아기에게 임금님께 올리는 예우의 봉헌을 했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봉헌했습니다. 그때 봉헌할 때에 아기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과연 그 아기의 모습이 임금이나 왕의 모습이었을까요??? 주님 공현 이후, 오늘이 3일째 되는 날이라고 했는데 지난 이틀간 선포된 복음내용과 오늘 복음의 내용은 하나의 주제로 모아집니다. 그 주제는 왕/임금입니다. 참 왕과 참 임금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가 주님공현후 3일동안 전례 독서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 왕과 참 임금은 호산나 호산나 하며 환호하는 가운데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군중에 둘러쌓여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은 진정한 임금이나, 참 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과 상반된 모습을 추구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군중을 갈라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 왕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왕의 모습과 신적인 왕의 모습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왕의 모습은 아기처럼 아무 권한도 없어 보이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왕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관에 짓눌려 몰골이 찌들린 모습입니다. 참으로 임금의 모습이란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세상에 군림하는 왕의 모습과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신적인 왕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어제복음과 오늘복음을 통해서 선포되는 내용인데, 참 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어제복음과 오늘 복음입니다. 이 두 복음 내용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빵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입니다. 어제 복음은 빵의 기적이고, 오늘 복음은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입니다. 루카복음을 제외하면, 마태/마르/요한복음에서는 동일하게 빵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연결지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빵의 기적을 하신 후에는 곧장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 두 기적은 아주 상징적인 내용으로 볼 수 있는데, 육적인 인간을 다스리는 임금이나 왕이 아니라 하늘을 다스리는 왕이 지상의 두 세력인 땅의 권한과 물의 권한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기적사화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 의해 왕으로 선포될 움직임을 알아차리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일생동안 모두 세차례에 걸쳐 왕으로 추대될 유혹을 물리치셨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첫 번째는 어디에서 유혹받으셨습니까??? 40일간 단식하실 때에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지요. 그리고 두번째는 어디입니까??? 오늘 복음입니다. 빵의 기적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흩어지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하시어 군중을 배불리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들의 왕으로 선포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어디입니까??? 십자가 위에서 유혹을 당하셨습니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23,37) 이 세 유혹중에서 가장 강력한 매력있는 유혹은 어디입니까??? 두 번째 오늘복음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을 서로 갈라놓으셨던 이유는 군중들이 그런 마음을 먹게 선동하던 사람들이 당신의 제자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군중이 서로 공모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추켜 세우려는 것을 알아 차리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바라시는 왕의 모습은 인간적인 왕의 모습과 다른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적인 왕의 모습이 겸비되지 않은 불안한 왕의 모습은 세상이 추구하는 왕이라는 것입니다.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려는 왕이 아니라 아프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고쳐주고 싸매주면서 고통을 나누는 왕이 참 왕이자 참 임금이라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서 오늘 그 유혹을 물리치셨던 것입니다.

온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아기 예수님 안에서 참으로 평화로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온전히 봉헌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