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제32주간 수요일 루카17,11-19 (20241113 스승)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나병을 고쳐주신 장소는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에 있던 마을 어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치유해주시는 장면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입니다. 그냥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하고 이르신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동안 몸이 깨끗해져서 나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아홉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러 돌아온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돌아온 외국인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홉은 누구였을까요??? 그들도 다른 외국인이었을까요??? 아마도 유다-이스라엘인 이었을 것입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가 나병이라는 중병에 걸렸을 때에는 이방인이든 유다인이든 구분하지 않고 서로 어울려 함께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이 다 나아서 정상인이 되고보니까 이제는 외국인과 함께 다니는 것이 왠지 껄끄러워집니다. 그 동료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드러내놓고 가르치시며 기적을 베푸실 때엔 예수님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우리의 스승님이라고 으스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혀서 결박당하시자 모두 도망가버렸습니다. 같이 엮이기 싫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따라가기는 했지만 멀리서 불을 쬐며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이 아니냐고 묻자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못하오” (마르14,71)
오늘 제1독서 디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는 죄를 짓는 줄도 모르고 짓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데에는 참으로 긴 세월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죄를 고백했다고 해서 내게 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성령의 은총을 풍성하게 부어주신 스승예수님께 감사드리러 돌아올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